[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정몽구 회장은 경영에 대한 감(感)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정 회장은 가끔 '자동차가 갈수록 어렵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제가 봤을 때는 남보다 몇 수는 앞서 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일 기아자동차가 중국 3공장 건설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불현듯 몇 개월 전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와 가졌던 대화내용이 떠올랐다.
이날 대화주제는 현대ㆍ기아차의 10년이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급성장을 거듭한데는 투자 또한 적시에 이뤄져 가능했다. 정 회장의 강약 조절이 절묘했다"고 언급했다.
10년을 생각해보면 정 회장은 중요 분기점 마다 역발상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호황에는 생산확대를 자제하고 불황에는 오히려 투자를 늘리는 식이다. 한 측근은 "경영에 있어서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올 상반기 전세계 자동차 시장이 질주하자 정 회장은 증설 자제령을 내렸다. 최고임원들이 "도요타를 제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해도 꿈쩍도 않았다. 6월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정 회장은 "증설만은 절대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이 같은 역발상은 마케팅 전략에서도 나타난다. 2008년 전세계가 금융위기에 빠졌을 때 미국시장에서 실직자 차량 되사주기 마케팅을 전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구매에 따른 보험료가 더 들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미국시장에서 정착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기아차 중국 3공장 투자 결정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아차는 올 상반기까지 실무진을 중심으로 중국 3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증설은 안된다'는 방침에 따라 장소 등만 정했을 뿐 시기는 결정하지 못했다. 8월 이후 유럽과 미국 발 금융위기가 불거지면서 내부에서는 '3공장 투자를 안하기를 잘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오히려 '올해는 투자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증설 반대'를 외치던 정 회장은 남들이 움츠리기 시작하자 증설 카드를 과감히 꺼내들었다. 그동안 그가 이뤘던 '마법 같은 성취'를 지켜볼 때 성공 여부에 귀추가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착공은 내년 하반기, 양산은 2014년부터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2014년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다시 호황을 맞게 된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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