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신 기자]올해처럼 금융감독원의 영(令)이 안서는 때가 또 있을까 싶다.
연초에는 전현직 임직원이 대거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되면서 체면을 크게 구겼다.
일부 인사였지만 그 파장은 컸다. 퇴직 후 은행과 증권, 보험, 카드, 저축은행 등 1ㆍ2금융권의 감사 자리를 포함해 한 자리 차지했던 관례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인사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금감원 안팎에서는 "꿀단지가 깨졌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저축은행 사건이 잊혀질만 하니 이번에는 보험쪽에서 일이 터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6개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종신보험 및 연금보험 등 개인 보험 상품의 이율을 담합했다며 3600여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보험사들이 "금감원이 제시한 표준이율 범위에서 이율을 결정해 왔기 때문에 담합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금감원의 상시 감독과 검사를 받으면서 그 기준대로 상품을 운용했는데 공정위로부터 철퇴를 맞는 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만 믿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는 하소연이다. 정부 내 힘의 논리에서 금감원이 공정위에 밀렸다는 점에서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금감원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앞으로 지도편달을 금감원이 아닌 금융위원회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힘과 권한을 갖고 있는 진짜 공무원에게 관리감독을 받고 싶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완장 찬 똠방각하'라는 비아냥까지 들려온다.
문제는 금융권의 이 같은 불만이 그동안 쌓여온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한 성격이 짙다는 데 있다.
금융회사들이 낸 분담금으로 월급, 그것도 상당히 높은 임금을 받는 금감원 임직원이 현직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퇴직하면 금융권 노른자 자리를 꿰차온 데 따른 묵은 감정이 누적돼 왔기 때문이다.
물론 자리가 그냥 보장되는 건 아니다. 현직에 있을 때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금융소비자 입장이 아니라 금융회사의 이해를 그럴싸한 논리로 교묘히 포장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 말이다.
실제 최근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급감하면서 자동차 보험료를 인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자 금감원이 나서서 "통상 겨울철에 사고가 많이 나는 점을 감안, 올 겨울이 지나야 보험료 인하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해명성 발언을 했다고 한다. 자동차보험료 가격 자유화에 역행하는 말이기도 하고 해석에 따라 담합을 조장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신설을 둘러싸고 또 다시 조직 이기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 권한을 금융위원회에 넘길 수 없다며 노조가 들고 일어설 태세다.
저축은행 비리사건이 터진지 채 1년도 안됐는데 말이다. 역시 '세월이 약'인 모양이다.
조영신 기자 as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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