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망알라파트 전도사 이브퀘르 교수의 조언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199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조르주 샤르파크(George Charpark) 박사에 의해 처음 시작된 라망알라파트는 초창기 300여개의 교실에서 작은 실험을 하는 형태로 출발했다. 이후 2002년 프랑스 교육부의 과학교육 개혁정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공교육영역에 정식으로 도입됐고 현재 30여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도 지난해부터 '창의인성'교육을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라망알라파트' 교사 연수를 유치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타계한 조르주 샤르파크 박사와 함께 '라망알라파트'의 확산에 기여해온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회원인 이브 퀘르(Yves Quere)교수를 지난달 26일 파리 국립 학술원에서 만났다.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려면 가장 먼저 '호기심'을 자극해야 = 아이들의 호기심은 자연적인 게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극하고 개발해야 한다. 아이들이 주변의 현상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학부모와 교사들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고, 아이들 스스로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는 욕구를 강화해야 한다. 과학은 인류의 호기심에서 생겨났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결국은 창의성을 키우는 길이다.
라망알라파트는 학생들이 스스로 깨달으면서 배울 수 있는 체험형 과학수업이다. 체험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관찰하기 때문에 이해하려는 욕구가 생긴다. 그러나 하나를 배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문제도 있다. 또 모든 과목을 전부 체험 형식으로 가르칠 수도 없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지식을 주입하고 싶으면 주입식 교육을 해야 하고,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면 라망알라파트와 같은 체험교육방식을 도입해야 된다.
프랑스는 초등학교 과학교육을 위해서 '이해'를 선택했다. 교육과정도 아이들에게 지식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철학 하에 수립됐다. 배우는 양을 줄이면서 지식보다는 아이들에게 과학적 사고를 만들어주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망알라파트와 같은 교육프로그램이 가능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식'과 '이해' 양자를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우주에 대해 배울 때 여러 별자리 이름과 궤도는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없다. 결국 지식을 배워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시기마다 선택과 집중은 필요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개방적인 사고, 즉 자기 주변에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열린 사고를 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게 더 중요하다. 과학적, 체계적 지식은 중·고등학교에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 자세를 길러주는 게 우선적인 목표라고 생각한다.
라망알라파트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언어능력도 향상시킨다는 결과가 나왔다. 라망알라파트를 시작한 첫 해, 초등학교 교사들 400명 정도가 모여서 수업결과에 대해서 서로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교사들은 실험 중심으로 수업을 하니까 토론 등 상호작용이 활발해져 학생들의 언어습득이 매우 빨라졌다고 했다.
과학교사들이 이 사실을 발견했고, 우리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고 느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보다도 언어소통능력, 모국어활용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교육부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과학교육과 언어교육을 자연스럽게 연계시키게 된 것이다.
▲한국에 필요한 건 '중용'=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공부 스트레스로 인한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에서도 초등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어주면서 '중용'을 취하는 게 필요하다.
교육 분야에서 범국가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이 음악, 미술 등 예술영역과 과학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과 과학은 비교적 문화적·언어적 차이에 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를 통한 국제협력도 가능하다. 이것이 라망알라파트의 매우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좋으니까 무조건 도입해야 한다'는 방식은 옳지 않다.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 유럽 등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라망알라파트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찰도 있었다. 새로운 방식에 대한 저항이 컸기 때문이다.
'저항'은 크게 세 가지 수준에서 일어난다. 첫째는 정책결정권자 수준으로 교육당국의 보수적인 태도가 걸림돌이 된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진통을 겪었고, 브라질, 말레이시아,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둘째, 교사 스스로 새로운 교육방식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 그래서 교사를 다양한 연수프로그램과 지원이 실질적으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학부모들의 반발도 일어난다. 중국과 같은 경우, 교육부라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었지만 초기 학부모로부터 많은 저항이 있었다.
'지식을 빨리 가르쳐야 한다. 시간이 없다'는 학부모들의 저항으로 처음에는 10개 학교로 시작했다. 물론 지금은 수 천개의 학교로 확산됐다. 프랑스도 처음에는 조그맣게 시작했다. 법으로 강요해선 안 되고, 설득으로 조금씩 그 비율을 늘려가야 한다.
▲정부·교사·과학자 등 사회전체가 움직여야= 라망알라파트는 프랑스국립 과학아카데미에서 시작해 정부의 지원과 대기업, 그랑제꼴 대학생들의 동참, 그리고 체계적인 교사연수 등으로 가능했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미래의 과학자가 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재능기부에 동참한 것이다.
먼저 과학자들이 주축이 된 과학아카데미의 역할이 중요했다.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은 계속 바뀌지만 학술원의 아카데미 회원들은 종신직이라 바뀌지 않는다. 과학아카데미에서는 라망알라파트를 위한 재단을 만들고 있다.
물론 정부의 도움도 받는다. 라망알라파트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지역을 중심으로 파일럿 센터를 개설해 프로그램 보급하는 기지로 삼고 있다. 전국의 20여 곳에 위치한 파일럿 센터에서는 체험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사들을 위한 연수도 이루어진다.
또 프랑스 최고의 명문인 그랑제꼴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동참하고 있다. 학생들이 초등학교에 가서 과학교사를 지원하도록 하는 강좌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미슐랭 등 대기업도 나서서 라망알라파트 교육을 위해 후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라망알라파트의 지속성을 위해 제일 중요한건 교사 양성이다. 교사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수업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교사연수뿐만 아니라 교원양성단계에서부터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사들을 위한 온라인 인프라도 확충됐다. 라망알라파트 인터넷 사이트에 수 백개의 학습모델을 탑재해 교사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학습모델을 만들어서 올리는 주체는 모두 교사들이다. 스스로 만든 교재를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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