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모두가 돈이 안 될거라던 랜드로버는 그룹의 ‘캐시카우’가 됐고, 불티나게 팔릴 것을 기대했던 소형차 ‘나노’는 안 팔린다. 인도 경제 2위 산업체 타타자동차가 고민에 빠졌다고 9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타타자동차는 2008년 3월 미국 포드로부터 ‘손실덩어리’ 영국 재규어랜드로버(JLR)를 23억달러에 인수했다.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30억달러의 브리지론까지 받았다. 당시 시장 애널리스트들은 한결같이 타타자동차가 포드도 실패한 JLR의 회생을 해낼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면서 ‘경영감각이 결여된 잘못된 선택’이라고 입을 모았다. 모건스탠리 자동차산업 애널리스트였던 발라지 자야라난은 타타의 JLR 인수에 대해 “시너지효과도 기대할 수 없고 비용만 드는 가치파괴적 인수”라고 평가했다.
그 무렵 타타자동차는 인도 내수시장을 겨냥한 보급용 초소형차 ‘타타 나노’를 야심차게 내놓았다. 2009년 4월부터 판매를 개시한 나노는 기본형이 10만 루피(약 2000달러) 밖에 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싼 자동차였다. 가구당 평균 수입이 낮고 오토바이 보급률이 높은 인도 내수시장에서 처음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공략 목표였다. 타타자동차와 시장 애널리스트들은 새로운 시장영역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다들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한 JLR은 타타자동차의 최대 ‘캐시카우’가 됐다. 타타는 2011년 3월까지 한해 동안 21억달러의 순익을 냈고 이중 대부분이 JLR의 기여분이었다. 중국·러시아 등 신흥국 시장에서 상당한 실적 호조를 보이면서 타타의 전세계 판매량은 전년대비 26% 증가했고, JLR의 순익은 전년도 5100만 파운드에서 11억200만파운드(17억달러)로 늘었다.
반면 ‘국민차’로 내놓은 나노의 판매는 형편없었다. 판매는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여 9월에 전년동기대비 47% 감소를 기록했다. 출시 당시 타타는 연간 50만대 판매를 호언장담했지만 2년이 넘은 지금 나노의 총 판매대수는 10만대를 겨우 넘었다.
이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은 나노가 JLR의 회생에만 전력을 기울이면서 나노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FT는 나노 프로젝트에서 일련의 ‘실책’들이 있었던 것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노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나노의 생산은 2008년 생산부지 확보가 논란에 부딪히면서 1년이 넘게 지연됐고, 출시됐을 때는 타타의 요란한 선전도 이미 빛이 바랜 뒤였다. 반면 경쟁업체들은 충분한 가격경쟁력을 갖춘 유사 경차를 내놓았고, 타타는 애초 목표 고객층이 집중된 대도시 외 지방에서 튼튼한 딜러십 망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마케팅 역시 문제였다. 한 경쟁 메이커의 임원은 FT와의 인터뷰에서 “타타자동차는 인도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싸구려’자동차를 타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한편 JLR은 상당한 유리함을 갖고 시작할 수 있었다. 재규어와 랜드로버 모두 이미 영국을 중심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쌓은 브랜드였고 충성도 높은 고객층도 여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타는 인수 직후 신속히 인력 감축과 광고비용 삭감을 단행했다. 신규 자본투자를 통해 독일 등에서 새로운 엔지니어들을 수혈했고, 신규 공장설립과 신형모델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타타는 뒤늦게나마 나노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마케팅 캠페인을 실시하고, 중소도시에서 딜러십 확대에 나서는 한편 인도 내 29개 은행과 제휴해 자동차 구입 대출 혜택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JLR의 성공이 나노 브랜드의 회생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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