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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전세제도 잡은 전세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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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주택 임대차 시장에는 한글만큼 고유한 우리만의 제도가 있다. 바로 전세 제도다. 주택가격 일부를 보증금으로 맡기고 남의 집을 빌려 거주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는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비롯됐다. 당시 부산ㆍ인천ㆍ원산 등 3개 항구 개항과 일본인 거류지 조성, 농촌인구의 이동 등으로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주택 임차관계가 형성됐다. 이 후 6ㆍ25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의 주택난이 심화됐고 이 과정에서 전세제도가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전세제도가 140여년 만에 사라져가고 있다. 월세가 무서운 속도로 전세시장을 잠식하고 있어서다. 2000~2010년 서울시 통계 '점유 형태별 주택현황'을 보면 지난 2000년 127만1330가구였던 전셋집은 지난해 115만2714가구로 11만8616가구(-9%)가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월세주택은 50만2623가구에서 86만2870가구로 36만247가구(72%)가 급증했다. 월세가 크게 늘면서 지난 2000년 전세, 보증부월세, 무보증월세 등 전체 임대 주택 10가구 중 2.8가구였던 월셋집 비율은 지난해 4.3가구로 높아졌다. 전입 신고를 하지 않은 단독ㆍ다가구 월세 세입자까지 합하면 월셋집 비율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같은 속도라면 20년 후에는 역사속에서나 전세제도를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 고유의 전세제도가 이처럼 벼랑 끝에 내몰린 데는 올해만 네 차례 발표된 전ㆍ월세 시장 안정화 대책이 한 몫했다. 이들 대책 모두 다세대주택이나 도시형생활주택 등 1~2인 가구의 공급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 들어 마지막으로 나온 8ㆍ18 대책만 봐도 그렇다. 주거용 오피스텔에도 임대주택 수준의 세제 혜택을 주고 건설자금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건설업체는 물론 여유계층의 자금을 임대 주택시장으로 끌어들여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포석인 셈이다. 임대 공급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전세시장도 안정화될 것이란 게 정부의 기대였다.


그러나 기대는 어긋났다. 부동산1번지에 따르면 8ㆍ18 대책이 나온 지 딱 50일째인 7일 현재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 총액은 588조8051억원에 이른다. 이는 8ㆍ18 대책 직전 보다 11조7186억원이 늘어난 금액이다.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 총액은 287조2684억원에서 293조6641억원으로, 50일새 6조3957억원이 늘었다. 경기도와 인천 역시 같은기간 5조924억원, 2305억원씩 증가했다. 뛰는 전셋값을 잡겠다더니 전세제도만 잡은 꼴이다. 핵심에서 비켜난 전세대책으로 월급쟁이 서민들의 한숨만 깊어졌다. 한숨 속엔 분노가 숨어 있다.


"필요한 것은 월셋집이 아니라 전셋집이다. 맥을 못 짚어도 너무 못 짚었다. 이 답답아!"




이은정 기자 myb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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