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김진우 기자]정부가 23일, 원/달러 환율급등을 막기 위해 수출대기업들에 협조를 공개적으로 요청함에 따라 외환시장 안정에 대기업의 역할이 커지는 모습이다. 정부가 구두개입, 시장개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대기업에 이런 요청을 함에 따라 대기업들이 실제 달러 매도에 나설 지 주목된다. 시장 일각에서는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대기업들이 환율 급등에 따른 환차익 실현을 위해 달러를 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국내 수출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시장 상황에 대한 의견을 듣고 필요 시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이들 수출업체에는 달러를 많이 벌어들이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두산중공업 등이 망라돼 있다. 협조요청의 핵심은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쌓아놓고 매도를 늦추는 '래깅'(Lagging) 전략을 자제해 달라는 것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달러를 풀라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혼란한 시장상황을 틈탄 '달러 사재기'가 투기세력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책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이 같은 액션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서도 효과를 봤다.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10월 8일에 재향군인회 회장단.임원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달러가 자꾸 귀해지니까 달러를 사재기한다"면서 "달러를 갖고 있으면 환율이 오르고 바꾸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기업도 좀 있는 것 같으나 국가가 어려울 때 개인이 욕심을 가져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금융위기 때문에 사재기 하는 기업이나 국민이 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금융시장 주변에서는 환 투기 세력이 횡행하고 있다는 관측이 꼬리를 물고 있고 사정 당국 내사설도 흘러나왔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400원선을 오르내리는 급등세에 있었다. 외환당국에 압박에 가세했다.
환율매파로 불리는 최종구 당시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현 국제업무관리관)은 이날 시장이 끝난 뒤 "지나친 과열, 오버슈팅"이라고 평가하고 폭등 장세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나 외채 때문이 아니라 기술적 요인이 가세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최 국장은 특히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의 쌓아놓고 있는 기업들이 계속 매도를 미룰 경우 큰 손실을 볼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이후 주요 수출기업들 임원들을 만나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 구하기도 했다.
정부와 경고가 있던 다음날인 9일 삼성전자가 외환시장에 달러를 매각했다. 삼성전자는 달러 매각에 나서게 된 배경에 대해 "수입물품 결제 등 외화결제 수요를 제외하고는 잉여외화는 그때 그때 매각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른 것"이라며 일상적인 조치임을 강조했다. 당시 매각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환율 급상승으로 달러를 갖고 있기만 해도 돈이 불어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대규모 달러 매각에 나선 것은 정부의 요청에 부응,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추가 차익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됐었다. 공기업인 한전KPS는 같은날 환율 안정을 위해 해외 사업 수익금 가운데 500만 달러를 국내 외환시장에 매각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었다. 9일 환율은 1485원까지 폭등후 1379.5원으로 밀리며 5일 만에 하락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
김진우 기자 bongo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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