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폐막되는 올해의 하계 세계경제포럼(WEF)은 국제경제 무대에서 중국의 발언권 수위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 국제회의로 기억될 것 같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그제 대회 개막식 연설에서 "중국은 유럽을 도울 준비가 돼 있지만 먼저 유럽이 중국에 대해 시장경제국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는 "투자자의 이익 보호를 위해 재정과 금융의 안정성을 유지하라"는 말로 정책운용상 책임성을 갖출 것을 촉구하고, 중국의 대미국 수출과 투자에 대한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이번 대회에서 다수의 중국 관리와 학자들이 최근 고조된 중국의 역할론에 대해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재정위기의 불길에 휩싸인 유로존 국가들이 '최후의 소방수'로 여겨지는 중국이 불 끄기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중국 지도층의 위와 같은 태도는 각성의 효과가 있다. 서구의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원자바오 총리의 발언을 비중 있게 보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3조20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축적한 중국에 그 돈을 가지고 지원해 달라고 했더니 중국이 '그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전에 서구의 기준으로 중국을 평가하고 중국에 불이익을 주던 태도부터 고치라'고 목소리를 높인 셈이니 그럴 만도 하다. 중국은 지금 유럽의 지원 요구를 수용할 듯 말 듯 애매한 자세를 취하면서 자국의 지위를 개선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근현대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태도는 상하이 등 5개 무역항을 개방하게 한 1842년 난징조약 이후 169년 만에 중국이 서구에 국제 경제관계의 재조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깝게는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미국과 수교한 지 33년 만에 중국식 시장경제와 서구식 시장경제 사이의 대등한 관계 설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중국인들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중국은 군사ㆍ외교관계에서만이 아니라 경제관계에서도 '도광양회(韜光養晦ㆍ실력이 있으되 드러내지 않음)'를 넘어 '유소작위(有所作爲ㆍ힘을 행사할 수 있는 곳에서는 행사함)'의 단계에 들어선 모양새다. 이웃한 우리로서는 중국의 이런 역사적 변모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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