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국제통화기금(IMF)과 유로존 금융당국 사이에 유럽계 은행들의 자본건전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을 평가하는 기준과 보유 금융자산의 가치 평가기준이 시장가격(mark-to-market)과 모델가격(mark-to-model) 중에서 어떤 것이 적절한지에 관련된 것으로 이는 단지 이론적 논쟁이 아니라, 은행의 건정성과 주가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장에서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계 은행들이 보유한 유럽국가들의 국채를 재무제표에 어느정도 반영해야 하는지 IMF와 유럽 당국들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다고 1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IMF는 올 가을 발간 예정인 세계금융안정보고서(GFSR)의 초안에서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등의 국채의 시장가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신용부도거래(CDS) 가격을 사용한 반면, 유럽 금융당국은 이같은 평가는 부분적이며 오도된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또 캐나다 은행들의 자본건전성을 둘러싸고 투자가들과 은행 사이에 유형자기자본(TCE; 보통주만을 계상)과 기본자기자본(Tier1; 우선주, 선순위채, 보통주를 포함) 중에 어떤 것이 올바른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캐나다 일간 메일지가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FT는 IMF 관계자의 말을 인용, 국채 가격을 시장 가격으로 평가하면 유럽계 은행들의 유형자기자본(TCE)은 약 2천억 유로, 10-12% 가량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시장가격 평가는 이들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다른 은행의 자산에 대한 평가 축소로 이어지는 연쇄 효과를 가져와 실질적으로 거의 두배의 마이너스효과에 이를 수도 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그러나 유로존 국가들은 이같은 평가 결과들을 일축하고 있다. 스페인의 엘레나 살가도 재무장관은 1일 “가격이 오른 독일 국채(Bund) 보유분은 고려하지 않고 잠재적 손실만을 계상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살가도 재무장관은 또 지난 2009년 IMF가 유로존 은행들의 손실을 과소계상했다고 평가했다가 나중에 수정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유럽 은행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가 은행의 취약성을 확인하는데 더 나은 지표”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27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 은행들의 경우 재본확충(Recaptalisation)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외신은 전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은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강제적인 자본 재구성이라고 주장하며, 취약한 은행들에 직접적인 자금 투입을 위해 4400억 유로 규모의 유럽재정안정기금을 사용할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이에 대해 관련 유럽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이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며 분개한 것으로 CNBC는 보도했다. 이들은 라가르드 총재가 은행 문제를 잘못 인식하고 있으며 혼란스러운 발언으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논쟁에 참여한 한 IMF 관리는 시장가격 분석은 최근의 유럽계 상업은행들의 주가 하락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으며 “냉혹하기는 하지만, 이 방법들이야 말로 헷지펀드들이 현재 사용중인 방법들”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주장은 국제회계기준이사회(IASB)이 최근 유럽 금융 당국에 대해서 보유 남유럽국가 부채에 대한 손실액을 축소계상하고 있다는 비판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미국의 경우 은행 자기자본 평가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유형자기자본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나 보유 금융자산에 대해서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맞자 정치권과 의회에서 미국회계위원회에 압력을 넣어 기존의 시장가격 평가를 모델가격으로 전환했다.
시장에서는 시장가격으로 보유자산을 평가하고 유형자기자본만을 계산하면 유럽의 일부은행(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딧, 프랑스의 쏘시에떼제네랄 등의 TCE 비율은 2% 미만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제결재은행에서 권고하고 있는 기준인 기본자기자본 비율은 8% 수준이다.
이공순 기자 cp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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