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저소득층 자녀에게 더 많은 교육기회를 제공할 목적으로 사재 5000억원을 추가로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기업이 아닌 개인의 기부로는 국내에서 사상 최대 규모다. 이로써 정 회장은 2007년 기소됐을 때 천명한 8400억원의 사재출연 약속 가운데 기출연액을 더해 6500억원의 출연을 이행하게 된 셈이다. 방식은 정 회장이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지분 일부를 자신이 설립한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에 기부하는 것이다.
정 회장의 통큰 기부는 회사 돈이 아닌 개인 재산을 내놓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어쩌면 그의 이번 기부가 재벌총수 일가를 비롯한 우리나라 부자들의 기부문화 변화에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까지 갖게 한다. 재벌총수 일가의 거액 기부는 그동안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 중 상당부분은 개인의 기부가 아닌 회사 재산의 헌납이었다. 그런 경우는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는 있지만 기업을 통해 부를 얻은 사람 개인의 박애주의 실천은 아니다. 사실 기업의 재산은 일회성 기부로 지출되기보다 생산적으로 재투자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도 성공한 기업가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자기의 개인 재산을 기부하는 사례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렇잖아도 최근에 미국 갑부인 워런 버핏에 이어 화장품업체 로레알의 최대주주인 릴리안 베탕쿠르를 비롯한 프랑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는 소식에 우리 사회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참이다. 나라가 재정적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자신들도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뜻에서다.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 실천에 나서는 나라에서는 부자들이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부자들이 질시와 미움의 대상일 뿐인 나라에서는 '부'의 정당성에 대한 시비로 시장경제 발달이 지체되고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번 정 회장의 사재출연 발표가 오는 31일 열릴 예정인 이명박 대통령과 30대 그룹 총수의 청와대 회동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해서 배경에 의구심을 보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깎아내릴 이유가 없다. 제2, 제3의 정회장이 나오기 바란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