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철현 기자] 다(多)주택자.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다주택자의 신세가 극과 극을 달리는 양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다주택 보유자는 '투기의 전형' '공공의 적'으로 취급받았다. 자기가 살 집 한 채만 사면 되는데 남이 살 것까지 싹쓸이해서 집값을 올려놓았다고 비난받기 일쑤였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중과(3주택자 이상 60%ㆍ2주택자 50% 세율 적용) 제도를 도입하면서 다주택자를 옥죄었다.
그랬던 다주택자 정책은 이명박 정부 들어 완화 쪽으로 확 바뀌었다. 부동산 부자들을 옭아맸던 세금 부문을 대부분 풀어버린 것이다. 종부세의 경우, 부과 대상 상향조정(6억원 이상→9억원 이상)과 과세 방식 변경(부부 합산 과세→개인별 과세)으로 납세 대상자가 많이 줄었고 세율도 크게 낮아졌다. 양도세 중과는 내년 말까지 유예된 상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집들을 대거 쏟아내면서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투기꾼'에서 집값 하락을 막는 '해결사'로 다주택자의 신세가 바뀐 것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다주택자가 치솟는 전ㆍ월세 값을 잠재우기 위한 '구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8ㆍ18 전ㆍ월세시장 안정 대책'은 다주택자를 위한 세제 혜택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보유 주택 한 채만 임대주택으로 등록해도 양도세 중과 배제 및 종부세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고 임대사업자 본인이 거주하는 주택도 3년만 보유하면 양도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골자다. 돈 있는 사람들한테 집을 여러 채 살 수 있게 하면, 주택시장도 살고 민간 임대주택 물량이 늘어나 결국 전ㆍ월세난도 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단기간에 신규 임대주택 공급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여유계층의 자금을 주택시장에 끌여들여 거래 활성화와 전ㆍ월세시장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겠다는 정부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집값 하락 기대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임대 수입만 바라면서 주택 매입에 나설 수요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민간 임대사업도 결국은 시세 차익이 나야 뛰어드는데 지금은 시장 전망이 워낙 어두워 각종 세제 지원에도 집을 새로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완화가 몰고 올 후폭풍은 거셀 수밖에 없다. 부동산시장이 장차 회복 국면으로 돌아서면 투기가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은 불 보듯 훤하다. 다주택 권유 정책이 전ㆍ월세시장 안정 효과는 내지 못한 채 집 부자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만 낳지 않을지 걱정이다.
조철현 기자 ch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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