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공생발전을 주창하면서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동반성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대기업의 동반성장을 평가하는 동반성장지수 산정작업이 구체화되고 있고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조만간 발표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또 4대 정유사가 독과점으로 장악한 주유소시장에, 공익성을 띠고 저렴한 제품을 판매하는 이른바 대안주유소 설립도 본격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정부의 시끌벅적하고 부산한 모습의 이면에는 적지 않는 난제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내건 화두, 용어가 오히려 대립과 갈등을 야기시키는 측면이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관련, 중소기업계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폐지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제도의 재판(再版)이라고 보고 있다. 대기업의 진출을 사전에 완벽히 차단하는 제도인 고유업종 제도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대기업들은 이 제도가 중소기업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고, 국내 대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보고 있다. 오히려 외국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는 빌미만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안주유소 역시 정부가 민간시장에 공영·국영주유소를 만들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일부는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제한적인 형태의 사회적 기업형 주유소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직전 노무현 정부의 상생을 지우고 동반성장이라고 했고, 한발 더 나아가 공생을 꺼내들었다. 혁신은 선진화라는 간판으로 바꿨다. 너도 나도(상생), 우리 모두(동반·공생)의 차이고 지금의 단점과 위기, 한계를 극복(혁신·선진화)하자는 이음동어(異音同語)라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동반성장업종으로, 대안주유소는 아예 나들주유소와 같은 이름이 더 낫지 않을까. 동반성장업종이라고 한다면 “대기업은 무조건 안 된다”가 아니라 대기업의 진출, 사업 참여도 일부 허용하되 중소기업을 좀 더 보호하면서 양측의 의견을 더 들은 뒤 업종도 키우고 기업도 키우자는 것이다.
대안주유소도 마찬가지다. 대안을 접두사로 단 것 중에 기존 주류를 뛰어넘은 사례가 별로 없다. 대안은 현재의 상황이 부적절, 불합리, 불균형하다는 데서 출발한 용어다. 처음에는 통 큰 주유소, 착한 주유소 등도 제안됐지만 대기업(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의 마케팅용어를 차용했다는 이유로, 나머지는 나쁜 주유소라는 의미가 전달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고심 끝에 대안주유소로 낙점됐다.
동네 슈퍼마켓의 자생력을 갖추도록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이 나들가게라면 나들주유소라면 어떤가. 나들은 강가나 냇가 또는 좁은 바닷목의 배가 건너다니는 곳이다. 대기업들의 과점형태인 현 시장상황을 인정하면서 농협주유소나 자가폴과 같은 저렴함과 공공성이 가미된 용어다. 국정화두와 정책용어가 각 경제주체 사이에서 반목과 질시를 야기시켜 경제·사회적 갈등만 초래한다면 정부로서는 작명을 재고해봐야 한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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