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있는 전세물건, 대부분 계약금 물린 ‘임자있는 몸’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서울·수도권 전셋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전세를 찾는 수요는 많은데 전세 물건이 부족하다 보니 집주인들의 ‘배짱 호가’가 판을 치고 있다. 웬만한 가격이 아니고선 계약을 서두르지도 않는 분위기다.
전셋값이 싼 데도 환경이 좋지 않아 전세 수요가 뒤늦게 붙던 비인기지역에서도 요즘은 배짱 호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세난’을 이용해 매주 호가를 올리는 것은 물론 한주만에 1000만원이 오르는 지역도 포착됐다.
1일 현재 서울 25개구 가운데 아파트 전셋값이 가장 싸다는 금천구. 이곳 아파트 전셋값은 3.3㎡당 505만원으로 강남구(1223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 역시 최근 전셋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3.3㎡당 450만원이던 전셋값은 1년새 50만원 가량 올랐다.
더 큰 문제는 신혼부부가 주로 찾는 중소형 물건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금천구에서 아파트가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은 독산동으로 총 52개 단지 5180가구다. 하지만 전세로 나와 있는 물건은 70여가구에 불과하다. 전세 물건이 많지 않다보니 가격은 부르는게 값이 됐다. 주공14단지 인근 H공인 관계자는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세입자를 찾는데 여유가 있는 집주인은 시세보다 1000만~2000만 원씩 높여 ‘배짱 호가’를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금천구 다음으로 전셋값이 싸다는 도봉구도 상황은 비슷하다. 불과 1년전 3.3㎡당 455만원이던 아파트 전셋값은 현재 533만원으로 80만원이나 치솟았다. 물건도 바닥났다. 51개 단지 총 2866가구가 몰려있는 쌍문동의 전세물건은 86가구에 그친다. 집값이 비교적 저렴해 직장인들에게서 인기가 높은 강북구도 1년새 전셋값이 3.3㎡당 100만원이 넘게 뛰었다. 몸값(전셋값)이 불어난 재계약 물건들로 인해 일반 전세 물건도 값이 부쩍 높아져 신규 계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세입자들이 몰리던 강북은 물론 강남에서도 ‘배짱 호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남구 개포동 현대1차(102㎡)의 전셋값은 3억8000만원선으로 2억원대 후반대에 거래되던 1년전보다 1억원이 올랐다. 서초구 방배동의 서리풀e-편한세상 110㎡ 전셋값은 1년전 4억1500만원에서 지금은 5억5000만원을 호가한다. 새 아파트인데다 대규모의 서리풀공원이 배후에 위치하고 방배역과도 가까워 집주인들이 호가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는 게 인근 중개업계의 설명이다.
강동구 역시 물건은 바닥났고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재건축 이주와 입주 2년차 단지의 재계약 사례가 늘면서 오름 폭은 더 커지고 있다. 암사동 한솔한빛, 프라이어팰리스, 롯데캐슬퍼스트 등은 면적을 가리지 않고 한 주만에 1000만원 이상씩 올랐다.
이렇다보니 신규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6월 임대차 계약 10만건 가운데 월세건은 3만4000건(34%)으로 세 집 걸러 한 집은 월세로 계약을 맺었다.
임병철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은 “올 하반기 입주 물량은 줄고 재건축·재개발 이주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어서 지금보다 더 전세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전세난을 잠재울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경환 기자 kh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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