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상법이 개정ㆍ공포됐다. 이에 따라 내년 4월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는 준법통제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준법지원인을 선임해야 한다. 개정 상법은 준법지원인의 선임 방법, 자격요건, 임기, 근무형태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준법지원인을 선임해야 하는 상장회사의 범위는 자산 규모 등을 고려하여 상법 시행령으로 정하게 된다. 지금 그 범위를 정하기 위한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경영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가 도입됐다. 상근감사,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내부회계관리제도의 도입 등 중요한 제도의 변화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현재의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그 단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우선시돼야 한다. 기존의 제도들은 그대로 두고 상장회사에 또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강제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준법경영을 위한 노력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로 준법지원인의 선임을 의무화하는 입법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효율적인 감독, 합리적인 내부통제 등을 위한 시스템의 도입은 강제가 아닌 권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선진 여러 나라가 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도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이나 지배구조 우수기업 평가 기준에 반영하는 등의 방안을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 기업들의 준법의식이 낮아 여러 가지 법률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니 법을 잘 아는 사람을 채용해 상근하도록 강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단견이다.
준법지원인제도가 감사제도나 사외이사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감사와 사외이사는 주식회사 최고의 의사결정기관인 주주총회에서 선임된다. 개정 상법에 따르면 준법지원인 임명은 이사회의 결의 사항이다. 만약 감사나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사회가 선임한, 이사회가 해임할 수 있는 직원이 어떻게 내부통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정 상법은 준법지원인이었던 사람에 대하여 그 직무수행과 관련된 사유로 부당한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사에 관한 일반법에 과연 이런 규정까지 두어야 할까. 상법 스스로 준법지원인의 직무상 독립성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실토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준법지원인의 선임이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는 오히려 기업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비용 대비 효과의 문제에 가장 정통하고 민감한 것은 기업 자신이다. 기업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알아서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기업의 크기, 시장의 범위, 영업 활동의 모습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상장회사에 준법지원인 선임을 강제하는 것이 기업을 위한 것일까, 준법지원인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을 위한 것일까.
준법지원인제도의 강제는 상장회사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규제이고 불필요한 상장유지 비용이다. 유망한 비상장 중소ㆍ중견기업이 상장을 회피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모든 점을 감안하다면 준법지원인제도의 도입은 재고돼야 한다. 개정된 법을 시행도 해보지 않고 폐기할 수는 없다면 제도 도입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준법지원인의 선임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기업으로 그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준법지원인을 선임해야 하는 상장회사의 범위를 정하기 위해 법무부가 구성한 준법경영 법제개선단이 특정 직역의 이해관계를 떠나 현명한 결론을 이끌어내기를 촉구한다.
김원식 코스닥협회 상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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