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저는 길음뉴타운에 삽니다. 서울시가 뉴타운 사업을 위해 '강북 미니 신도시'라고 명명한 곳이죠. 이전엔 무허가 판잣집과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빌라들이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있는 대규모 달동네였답니다. 지금은 옛날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2002년 10월 왕십리, 은평과 함께 뉴타운 시범지구로 지정된 후 대규모 고층 아파트촌으로 바뀐 덕분입니다. 바뀐 동네 풍경처럼 주민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웃들은 대부분 남양주나 고양 등 외곽지역으로 떠났습니다. 원주민은 5명 중 1명꼴도 안 됩니다.
나머지 주민은 뉴타운 개발이 시작될 때부터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순식간에 뒤바뀐 것은 개발이익을 얻으려는 외지인들과 서울시 전역에 전세난이 겹쳐진 탓입니다. 새 아파트가 대규모 공급돼 인근 지역보단 비교적 전세가 싸다는 소문이 나면서 여기저기서 전세 세입자들이 몰려듭니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 이젠 저렴한 전세를 찾기는 힘듭니다. 전용면적 59㎡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이 2억2000만원을 넘습니다. 전세 물건도 나오는 대로 빠지고 있어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은 이상 전셋집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고층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온 이 동네 역시 서울시의 전세난에서 비켜갈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동네에 불꺼진 아파트가 있습니다. 바로 길음뉴타운 3ㆍ4ㆍ7ㆍ8ㆍ9단지의 임대아파트들입니다. 짧게는 12일, 길게는 930일이나 비어있습니다. 미입주 임대 아파트는 109가구에 이릅니다. 애초 입주 예정자가 입주를 포기한 곳이거나 재개발 지역 주민 이주용으로 비워둔 곳이란 게 SH공사 얘기입니다. 일부는 서울시에 용도전환 신청을 해 노인정 등으로 개조해 사용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뉴타운 개발이 완료돼가는 시점에 1년 이상 비워진 집이 30채나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가뜩이나 길음뉴타운은 임대아파트 비율이 낮아 원주민의 재정착률이 낮다는 지적을 받았던 곳입니다.
불꺼진 임대아파트를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SH공사가 김인호 의원실에 제출한 공가 현황자료에 따르면 2011년 5월 기준 4847가구가 공가로 남아있습니다. 이 중 1년 이상 빈 집으로 남은 곳은 1546채에 이릅니다.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요즘 번듯한 아파트가 불꺼진 채 있다고 하니 무주택 서민들만 애가 탈 수 밖에 없습니다.
서울시는 앞으로 시내 재개발 지역에 짓는 아파트의 임대주택 비율을 현행 17%에서 20%로 높일 계획입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임대주택 공급량을 늘리기 보다는 기존 임대아파트의 활용 방안이 먼저 마련 돼야 하지 않을까요?
이은정 기자 myb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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