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연일 터지는 공직사회 비리로 전국이 들끓고 있다. 고위공직자가 대거 연루된 저축은행 사태에 이어 국토해양부 등 정부부처의 '목.금 연찬회' 파동에서 드러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는 이미 도를 넘은 모습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온 나라가 비리 투성이"라고 말할 정도로 공직 비리는 복마전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권익위원회가 21일 발표한 공공기관의 법인카드 사용 실태는 또 하나의 충격을 주고 있다. 권익위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8개 공공기관의 클린카드(법인카드) 사용 실태에 대해 조사한 결과, 6개 기관에서 법인카드를 쌈지돈처럼 사용했다. 한 공기업은 8개월간 노래방과 골프장, 유흥주점 등에서 1억2000만원 상당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업무 과련 증빙 없이 주말과 공휴일에 사용한 경우도 989건에 달했다. 법인카드를 직원들의 '제2의 보너스' 정도로 인식하고 사용한 셈이다.
더욱 큰 문제점은 비리를 적발한 권익위의 석연치 않은 태도다. 권익위는 이같은 사례를 공개하면서 해당 공공기관과 공무원에 대해 익명 처리했다. "가뜩이나 위축된 공직사회가 과거의 일로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공직자의 비리 행위로 대다수 '선량한' 직원들의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 일부 공공기관에선 클린카드 사용이 금지된 유흥업소에 대해서는 카드사에 전화해 사용 승인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권익위는 법인카드 골프장 사용에 대해 "기관의 목적상 접대라든지 그런 것이 많기 때문에 징계는 가혹하다고 생각한다"며 비리 기관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권익위가 공직비리의 발본색원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공공기관은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기관이다. 예산이 허투로 쓰이는지, 공권력을 이용해 부당하게 처리하는 일은 없는지 감시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공직비리 감시기관에서 비리를 덮어주고, 감싸는 모습을 보인다면 감시의 그물망은 그 만큼 느슨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연진 기자 g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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