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100일 잔치'는 없었다. 칭찬과 격려보다는 비난과 질타가 난무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향한 재계의 눈빛은 시리도록 따가웠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깊었던 탓이다. 지난 3일 전경련 허창수(GS그룹 회장)호의 '취임 100일'은 그렇게 '전경련 해체론'으로 얼룩졌다.
돌이켜보면 허창수호는 길을 잃은 난파선 마냥 맥이 풀려 있었다. 초과이익공유제, 연기금 주주권 강화, 자재구매대행(MRO) 등 재계를 옥죄는 현안들이 잇달아 터져나왔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재계를 대표해 '할 말은 해줄 것'이라던 기대감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쯤에서 되묻는다. 무능력과 무기력으로 점철된 전경련의 총체적 위기가 과연 허창수 회장 때문일까? 전경련에 대한 재계의 불만이 허 회장의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난 2월24일 허 회장이 제33대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한 것은 극적이었다. 그룹 경영에 이득이 없다며 모두가 손사래치던 자리를 막판에 '등 떠밀리 듯' 맡은 것은 그의 모질지 못한 성격 탓이었다. 출범 50주년을 맞아 전경련의 위상을 다시 세워보겠다는 책임감도 컸을 터였다.
하지만 전경련의 내부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전임 조석래 회장이 건강 문제로 물러나 있던 7개월 가까이 조직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일부 인사들은 수장이 공석인 틈을 타 조직을 쥐락펴락하면서 전횡을 일삼았다.
허 회장 취임 직전 단행된 조직 개편에서는 특정 인맥들이 대거 승진하며 일 잘하는 사람보다는 말 잘 듣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꿰찼다. 논란이 일고 있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조직 개편도 허 회장과는 무관하다. 허 회장 취임 전 정병철 상근 부회장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재계는 '회장보다 힘이 쎈 부회장'이라고 비꼬았다.
허 회장의 리더십 논란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이해해야 한다. 일부 인사들이 조직을 장악한 상태에서 허 회장의 철학이 녹아들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통상 전경련 회장이 바뀌면 상근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이 교체되기 마련이다. 회장이 명예직인 것과 달리 상근 부회장은 전경련 사무국을 대표하는 사실상의 수장이어서 회장의 최측근이 맡는 것이 자연스러워서다. 하지만 허 회장은 갑작스런 취임으로 인사권을 펼칠 기회를 잃었다. 이것이 결국 리더십 부재로 이어진 배경이다.
전경련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허 회장이 가장 서둘러야 할 일은 조직 쇄신이다.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지 않고는 1년, 2년이 지나도 리더십 논란은 반복될 뿐이다. 물론 회원사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동반돼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해 무엇하랴.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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