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재계가 때아닌 '스케줄 도둑' 시비로 얼룩졌다. 가해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단체이고 피해자는 기업총수나 CEO다. 재계단체가 이런저런 행사를 주최하면서 기업인들의 참석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화근이다.
2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2011 SCM(공급망관리) 리더스 포럼'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대한상의는 이원태 대한통운 사장을 비롯한 국내 주요기업 CEO들이 대거 참석한다고 홍보했지만 정작 행사장에 이 사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한통운이 올 최대 인수합병(M&A) 대어인 탓에 그의 갑작스런 불참은 뒷말을 낳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사실 처음부터 포럼에 참석할 계획이 없었다. 대한통운측은 "일정이 겹쳐 애초부터 참석이 어려웠다고 대한상의에 통보했다"며 "이 대표가 약속을 깬 것처럼 비쳐져 아쉽다"고 토로했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출장 여부를 놓고 한화그룹과 얼굴을 붉혔다. 22일 일본 동경 경단련 회관에서 개최된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에 김승연 회장 등 국내 기업인 30여명이 참석한다고 전경련이 밝힌 것이 발단이었다. 한화그룹은 개인 일정 때문에 김 회장이 불참한다는 의사를 이미 오래 전 전경련에 통보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번 일정은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한중일 정상회담과 연계된 중요한 재계 모임이어서 참석 여부는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었다. 전경련은 행사 직전 배포한 자료에서 '김승연 회장은 다른 일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지만 마치 김 회장이 갑작스럽게 일정을 취소한 것처럼 비치면서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한화를 다시 한번 자극했다.
재계 행사는 누가 참석하느냐가 흥행의 바로미터다. 따라서 주최측이 기업인들의 참석을 종용하는 것 자체는 나무랄 게 없다. 그렇다고 무리수를 둬서는 안된다.
참석이 불가능한데도 참석할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흥행 실패'를 막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그로 인해 덤터기를 쓰는 쪽은 기업인이다. '약속을 어겼다'는 부정적 이미지는 '신뢰'가 생명인 총수나 CEO에게 치명적이다. '스케줄 도둑'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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