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력·무기력 재계 불만 폭발..조직 쇄신 실패가 원인
[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허창수 효과는 없었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무능력과 무기력증은 그만큼 뿌리가 깊었다.
7개월 가까운 회장 공백의 위기속에 긴급 투입된 전경련 허창수호는 3개월만에 다시 '무용론'에 휩싸였다. 재계의 대정부 창구 역할은 커녕 밥그릇 싸움에 몰두하면서 비난을 자초한 탓이다. 조직 쇄신에 실패한 허 회장은 '벌써 레임덕'이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오는 24일로 취임 3개월을 맞는 전경련 허창수호가 무기력한 모습을 연일 노출하고 있다. 연기금 주주권 강화, 초과이익공유제, 자재구매대행(MRO), 감세 정책 철회 등 재계를 옥죄는 각종 현안에 입을 꼭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할 말은 해줄 것'을 기대했던 재계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전경련의 무기력함은 지난 19일 회장단 회의에서도 반복됐다. 회의는 맥없이 끝났고 정병철 상근부회장의 브리핑은 알맹이가 없었다. 정 부회장은 재계를 압박하는 정부의 최근 행보에 대해 "압력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몸을 한껏 낮췄다.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지 않아서) 회의에서 거론되진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이는 지난 2월 회장단 회의 때 이건회 삼성전자 회장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비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재계 한 임원은 "재계를 대변해야 할 전경련이 되레 몸을 더 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전경련이지만 하위 단체에는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다. 전경련의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 예산을 30% 줄이고 연구원도 20% 가량 내보내는 조직 개편을 무리하게 추진 중이다.
게다가 정병철 부회장이 한경연 부회장을 겸하면서 독립성 훼손이라는 반발까지 낳고 있다. 한 회원사 관계자는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해야 할 상황에 하위 조직을 축소하는 것도 모자라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은 재계의 전략 수립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의 조직 이기주의는 올 예산 집행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경련의 올해 총 예산은 회원사가 507개로 늘어난 덕분에 전년보다 3% 정도 증가한 371억원(일반 회계 202억원, 사회협력 회계 160억원, 특별회계 9억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복지후생비와 인건비를 대폭 늘린 것과 달리 정작 중요한 정책 사업비는 소폭 증가하는데 그쳐 '경제 정책 강화'를 다짐한 허 회장의 취임 일성을 무색케했다.
허 회장 취임 전 정 부회장 주도로 조직개편이 이뤄진 것도 뒷말이 무성하다. 전경련 내부 관계자는 "회장 취임 전 조직개편이 이뤄지면서 특정 인맥의 사람들이 대거 승진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신임 회장의 철학이 먹히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재계의 고위 임원은 "올해 출범 50년을 맞아 경제 정책 집단으로 거듭나야 할 전경련이 정치 집단으로 변질되는 분위기"라며 "회원사 이익보다는 자리 보전에 급급한 일부 인사들을 위한 조직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고 질타했다.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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