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메이커. 중거리 이상의 육상, 수영 혹은 자전거 경기에서 유망주의 최고 기록을 위해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 영화 <페이스 메이커>는 페이스메이커로 매번 30km만 뛰어온 마라토너가 생애 처음 42.195km 완주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다. 인공치아로 투박해진 외모와 검게 그을린 얼굴이 낯설어 보였다. 24일 충북 보은공설운동장에서 <페이스 메이커>의 주연배우 김명민은 뛰고 또 뛰었다. 중견배우 안성기는 마라톤 감독 박성일 역을 맡아 페이스메이커 주만호를 코치했다. 고아라가 연기하는 장대높이뛰기 선수 지원은 주만호의 친구다. 40% 촬영이 진행된 <페이스 메이커> 제작 현장에서 김달중 감독, 출연배우 김명민, 안성기, 고아라가 취재진과 만났다.
김달중 감독 “<페이스 메이커>는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의 성장기다”
연출 의도에 대해 <말아톤>과 <맨발의 기봉이>는 아마추어 마라토너 이야기들이었고 저희는 엘리트 코스를 달리는 국가대표 선수의 이야기이다. 마라톤 이야기이다 보니 거의 숨길 수 없게 영화를 열심히 찍고 있다. 주인공은 30km까지 메달권에 있는 선수를 매우 빠른 속력으로 끌어주고 결국 자신은 실전에서 뛰지 못하는 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는 선수의 이야기이다. 성공기까지는 아니지만 성장기 같은 이야기이다.
뮤지컬을 주로 연출하다 영화를 처음 하게 된 것에 대해 아직은 서툴러서 뮤지컬에서 쌓은 노하우를 영화와 접목시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끝나고 나면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공연 연출과 영화 연출의 가장 큰 차이는, 공연 연출은 가끔 집에 못 들어가고 영화는 거의 집에 못 들어간다는 점이다. 영화를 하면서 그날그날, 순간순간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공연은 하루 이틀 고심한 뒤에 준비할 수도 있는데 프리 단계가 끝나고 영화는 현장에서 바로 결정을 해야 해서 그런 점들이 어려웠다.
마라톤 장면 연출의 어려움에 대해 뛰는 장면을 찍을 때는 한 테이크 더 가자고 하기가 미안하다. 트랙에서는 한 바퀴를 뛰어봐야 300m 정도밖에 안 되는데 촬영 초반에는 도로에서 굉장히 오래 뛰는 롱테이크 촬영이 몇 번 있었다. 한 번 더 가자고 하기가 굉장히 미안했다.
김명민 “마라톤처럼 연기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출연 동기에 대해 주만호라는 사람이 나 자신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에 12.195Km를 완주하는 부분에서 시나리오를 읽으며 울었는데 그때의 첫 느낌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날 밤에 주만호라는 사람이 꿈에 나타날 정도였다.
연기와 마라톤에 대해 연기는 마라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 생각한다. 30km까지는 페이스메이커라는 존재가 도와주겠지만 그조차도 본인과의 싸움이다. 본인의 페이스를 잃으면 결국 아무리 좋은 기력을 가진 선수라도 완주를 할 수 없다. 배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촬영기간 동안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이고, 그 기간 배우는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토너와 같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는 면에서 마라토너와 배우는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인공치아 등 외모 변화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쓴 게 아니라 사실은 신경을 많이 안 쓴 것이다. 원래 내 모습이다. 이번 영화는 노메이크업으로 출연한다. 주만호의 어려운 가정환경과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어린 시절, 소년 가장으로서 동생 하나를 두고 살아온 인생 등을 짐작해 보면 그는 외모에 신경 쓸 시간이나 돈, 여유가 없었을 것 같았다. 인공치아는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고집스러운 면, 페이스메이커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오로지 동생을 돌보며 살아 온 점들이 투영돼있다고 생각했다. 인공치아를 끼고 한 달 전부터 연습을 했고 집에서도 계속 끼면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생활을 해봤다. 음향기사와 얘기해 보니 발음에 크게 문제가 없었다.
실제 마라톤 도전 계획에 대해 영화를 다 찍고 나면 마라톤 트랙 근처에도 안 가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조깅하는 건 좋아하는데 마라톤은 차원이 다르다. 어느 정도 뛰면 기분도 좋아지고 상쾌해지고 컨디션도 좋아지는데 그 이상을 뛰면 아주 악화되면서 기분이 나빠진다. (웃음) 비공식적으로 동호회에서 완주한 경험도 있다. 2000년, 한창 몸이 좋았을 때였다. 일산 호수공원 8바퀴를 풀코스로 뛴 적이 있다. 4, 5시간 정도였다.
특별출연으로 나오는 이봉주 선수와 함께 뛴 것에 대해 이봉주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뛰는 게 부담이었다. 감독님이 잘 뛰는 사람과 뛰어야 잘 뛸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있고 실제로 이봉주 선수 옆에서 뛰니 여러모로 따라하게 되고 폼이 좋아졌다. 많이 배웠다.
안성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기가 더 어렵다”
캐릭터에 대해 박 감독 역은 평소에 하기 힘든 캐릭터다. 웃음기도 없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도 않아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캐릭터라서 그런 점들이 나로서는 힘들었다. 영화에서 주로 많이 웃고 친절한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 이런 연기는 어렵다.
김명민과 연기 호흡에 대해 김명민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좀 심각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면이 많아서 함께 연기하는 게 즐겁다.
감독 역의 어려움에 대해 뛰고 싶은데 초침이나 쥐고 서있기만 하려니까 좀 심심하고 괴롭다. 촬영 첫날부터 대사는 또 어찌나 많은지. 냉정한 캐릭터로 대사를 소화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처음 한 3일간은 어떤 영화보다도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다.
고아라 “새로운 도전 해보고 싶었다”
캐릭터에 대해 굉장히 ‘쿨’하고 털털한 이면에 아픔이 많은 인물이다. 국민스타, 장대높이뛰기 미녀 새, 국민 요정으로 불리는 캐릭터다. 많은 혼란 속에서 주만호라는 인물을 만나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던 꿈을 찾아가게 된다.
한국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소감에 대해 (두 편의 해외 영화를 찍고) 한국 영화는 이번이 첫 출연이다. 1년여 쉬면서 학교생활을 하고 여러 가지 취미생활도 하고 시나리오도 많이 봤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고 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이 영화를 택했다.
장대높이뛰기 연습에 대해 원래 운동을 무척 좋아한다. 장대높이뛰기는 달려가서 훌쩍 뛰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감독님께 정말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시작했다. 촬영 한 달 전부터 준비했는데 전신운동이고 복근부터 엄청난 운동량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대와 친숙해지기 위해서 항상 장대를 가지고 훈련했고 기초 근력운동을 항상 했다. 부상이 조금 있긴 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해내고 있다.
사진제공, 스튜디오드림캡쳐
10 아시아 글. 고경석 기자 kav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