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ame is 백현진. 연남동 사는 백현진이다.
“연남동 사는 백현진”이라고 소개하는 건 이유가 있다. 가수인데 그림도 그린다고 하면 사람들이 되게 구리게 보더라. (웃음) 시도 쓴다고 하면 더 구리게 보고. (웃음) 그래서 그냥 “연남동 사는 백현진”이 가장 적절한 거 같다. 정말 연남동 사니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공연을 맡았다. 솔로 자격은 아니고 장영규 씨와 함께 하는 그룹 어어부 프로젝트 자격으로, 올해 발매될 4집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에 들어갈 곡을 불렀다. 29일에는 지프라운지에 솔로로 무대에 오른다.
올해 나올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은 한 사십 대 탐정이 잃어버린 종이뭉치에서 무작위로 열 몇 장을 가사를 삼아 노래를 만들었다는 내용의 앨범이다. 공적인 기록과 사적인 단상, 의미를 지닌 메모와 의미 없는 낙서까지 한번 다 뭉개보고 싶었다.
곡 작업은 얼추 다 됐는데, 장영규 씨도 나도 일이 많아서 발매가 늦어지는 중이다. 올해 어어부 프로젝트 공식 사이트를 만드는 데, 한 달에 한 두 곡씩 계속 올리기로 했다. 마스터링 된 상태는 아니지만,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앨범 발매 전에 먼저 들어 보실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안 하면 우리도 너무 늘어질 거 같다. (웃음)
중학생 때 영미 음악을 즐겨 들었는데, 재미 있는 가사들이 많았다. 그런데 라디오나 TV에 나오는 가요의 가사들은 성에 안 차는 거다. 다 너무 전형적이고, 습관화 된 이야기들로 들렸다. 박제된 풍경들, 전형적인 인물 묘사들. 사람 사는 이야기처럼 안 들리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직접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건 아닌데, 내 코가 석 자니까 나나 잘 해야지 싶다. (웃음)
20대 시절은 거세게 분노하고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날들이다. 부모님이 주신 백현진이란 이름도 싫어서 다 찢어버리고 싶었으니까. 수많은 예명을 만들고 지우고 만들고 지우며 그 시간들을 통과했다. 그런데 30대가 넘어가고 ‘아저씨’ 나이가 되니까 머릿속도 많이 바뀌더라. 왜, 사람이 바뀌면 다른 짓들을 하잖아. (웃음) 이름을 바꾸는 것도 이제 그만 하자 싶어서, 지금은 그냥 백현진이다.
2009년 만든 < The End >는 개인적으로 떠올린 화두를 추적하기에 동영상이라는 매체가 가장 잘 맞겠다 싶어서 시작한 건데, 영화계에서는 ‘단편영화’라고 부르고, 현대미술 쪽에서는 ‘비디오아트’라고 부르더라. 쟁쟁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노 개런티로 참여해준 작업이었는데, 너무 미안했다. 올 유월에도 하나 더 찍는데, 이번엔 아예 최고로 가난하게 작업할 생각이다. 사람들에게 덜 미안해 하며 일하고 싶어서. (웃음)
주류 영화들을 잘 못 본다. 청년 시절에는 잰 체 하려는 마음에 의도적으로 그런 게 분명히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정말 틀어 놓으면 지루해서 못 보게 됐다. 아직까지 잰 체 하려는 건 전혀 아니고. 지금 이 나이에 술자리에서 잰 체 해봐야 바보취급 밖에 더 받겠어. (웃음)
저자본 영화들에 끌린다. 내가 좀 막 하는 걸 보고 듣는 걸 선호하는 게 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저자본으로 작업하면 좀 막 하는 부분이 생기니까. 그렇다고 선댄스 영화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게이, 레즈비언 나왔다가, 길 걷다가, 가족끼리 화해했다가, 또 계속 걷다가, 차 탔다가. 그런 건 지루해서 못 보겠더라.
요즘엔 옛날 영화들을 계속 보게 된다. 오즈 야스지로 영화도 한동안 계속 봤고, 루이스 브뉘엘 만년의 3부작 <욕망의 모호한 대상>,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자유의 환영>도 좋아한다.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은 2년에 한 번씩은 다시 보는 거 같다.
올해 프로그램은 아직 못 봤는데, 전주의 영화들은 늘 지지한다. 예전에 왔을 때 기억도 좋았고, 주위 이야기를 들어봐도 영화제가 규모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점점 안이 탄탄해진다는 이야기도 꾸준히 들어 왔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하루에 두 편씩 챙겨서 봤는데, 이번에도 한두 편 이상은 챙겨보려고. 그런데 잘 모르겠다. 영화제에 오면 술을 너무 많이 먹여서. (웃음)
10 아시아 글. 이승한 fourteen@
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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