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증’. 뜻까지는 정확히 모르더라도 요즘 이 단어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유증이란 여성형 유방증(gynecomastia)의 줄임말로 남성의 가슴이 여성처럼 봉긋하게 나오는 증상을 말한다. 필자가 20~30대였던 시절만 해도 남자 가슴이 다소 봉긋하더라도 살이 좀 쪄서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그 시절에는 그런 증상을 가진 남성들이 많았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사람들에게 질환으로 인식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며 대중매체를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인터넷 보급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미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남성들도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으며 아름다움, 미적인 욕망은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 한 예로 꽃미남, 몸짱, 초콜릿 복근 등 남성들의 외적인 아름다움의 욕구를 반영하는 신조어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이슈화되는 것을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미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됐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과 다른, 혹은 이상적이지 못한 자신의 신체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남성들이 여유증으로 인해 성형외과를 찾는 케이스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5년 넘게 여유증 수술을 해 오면서 발견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수술환자 중 50% 이상이 외모나 패션, 특히 성형수술에 대해 전혀 관심조차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소위 우리 사회에서 얘기하는 고학력의 인텔리 계층. 이미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고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지식인인 이들은 표면상으로는 외모를 꾸미는 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옷도 부모님이나 부인이 주는 대로 입을 만큼 겉모습에는 무관심한 듯 보인다. 의대생부터 판검사, 의사, 교수, 간부급의 금융인 등 고학력의 소유자들, 이들은 패션으로 치면 유행에 민감하지 않는 스테디셀러를 선호하는 집단이다.
유행과 패션에 민감하지 않은 그들이 왜 유독 가슴에 대해서는 콤플렉스를 가지게 된 것일까? 인텔리 계층이 사회를 이끄는 리더 집단이라고 보았을 때 그들은 다수의 군중에 노출되기 쉽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다. 대한민국의 인정받는 ‘남자’의 위치에 서있는 그들에게 말 못할 고민이란 다름 아닌 ‘여성’을 상징하는 가슴인 것이다. 더욱이 남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이기에 이러한 콤플렉스가 더욱 극대화돼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실제로 병원을 찾은 많은 여유증 환자들이 성형외과를 방문하는 것 자체에 상당히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수술에 대해서는 매우 절실하며 철저한 비밀보장을 요구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미용 목적으로 성형외과를 찾는 여성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인데 이것은 단순히 더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구가 아니라 남들에게는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 그 자체인 것이다.
아무리 양성성이 중시돼 가는 사회라지만 신체적인 양성성은 환영받을 수 없다. 여성의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이 더욱 강조되고 남성의 탄탄한 가슴과 넓은 어깨, 심지어 초콜릿 복근과 치골 라인까지 대중이 원하는 신체의 이상향은 갈수록 디테일해지고 있다. 물론 이상은 이상일 뿐이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여유증은 치료해야 할 질환이 된다.
정철현 기쁨성형외과 원장
성형외과 전문의·의학박사, 대한성형외과 학회 정회원, 국제성형외과학회 정회원, 한림의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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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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