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미술창작 스튜디오 입주 작가 임현주씨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지체1급 장애인 임현주(52)씨는 3년 전부터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화가의 길이 그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그를 지탱해온 삶은 약사였다. 막상 약국을 그만둘 땐 막막했지만 이곳에 들어와 꿈을 찾았다.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스포츠상가 한편에 마련된 스튜디오는 임씨를 비롯한 지체 및 청각 장애인 14명이 입주해 활동하고 있다. 19일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7평 남짓한 개인 작업 공간에서 휠체어에 앉아 양떼를 그리고 있었다.
"장애여성이 79년 당시 대학교에 갔으니 모두들 내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내 고개를 가로젓던 임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집안형편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접고 약대로 진학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 그를 주위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았다.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가족들은 항상 학교 근처로 이사를 다녔다. 초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이 매일 업어서 학교에 등교시켰고, 중ㆍ고등학교 다닐 때는 항상 휠체어를 밀어주고 가방을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장애인은 그 당시 대학에 합격해도 불합격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가 대학에 진학해 무사히 졸업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학자금은 어느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서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그래도 생활이 어려워 방학이면 1달에 3만원을 벌기위해 인형모자 만드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과외가 금지됐던 시절에 몰래 과외까지 해가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약국을 그만두게 된 건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고민하게 됐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형제도 모두 세상을 등져 책임져야 할 가족도 없이 혼자되니 지금껏 집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그리고 약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잘 그리지 않아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거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들을 보면 뿌듯한 생각이 든다는 그는, 힘들게 사는 사람들과 자신의 그림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데 가장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소명의식도 생겼다.
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는 창작 공간 뿐만 아니라 작은 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열게 도와주었다. 2009~2010년의 일이다. 임씨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사회통합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2011 서울특별시 복지상 장애인분야 우수상'을 수상한다.
임씨의 남은 꿈은 장애인 미술 공동체를 만들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인간승리의 주인공으로 주목받은 장애인 가운데 지금은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도 많다"며 "모든 장애인이 성공의 주인공이 되어야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라, 자신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조금씩 지원해주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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