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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 간 소설가 김훈 "소통의 전제는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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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 간 소설가 김훈 "소통의 전제는 단절" 소설가 김훈씨가 지난 15일 서울 숭실대학교에서 '소설적 상상력과 인문학'이란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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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도형 기자]소통이 단절된 시대. 소통을 위해 섬으로 간 사나이가 있다. 소설 '칼의 노래', '남한산성'으로 유명한 작가 김훈씨다.

그는 요즘 15년 이상 거주한 경기도 일산을 떠나 서해안의 작은 섬 '선감도'(경기 안산시)에서 지낸다. 일산에 사는 부인이 가끔씩 섬까지 온다.


하지만 그는 "내가 혼자 사는 것이 고립은 아니다"라며 "혼자 있는 것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런 독특한 소통방식을 실험 중인 김훈이 젊은이들에게 소통에 관한 남다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서로 단절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숭실대학교(총장 김대근)를 찾은 김 작가는 제18회 인문학포럼에 참석해 '소설적 상상력과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김 작가는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스크럼을 짜고 군집을 이루는 것이 소통이 아니고 개별적 존재로 이성적 거리를 유지해야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개별적 존재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소통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소통은 동일화가 아니며 이성적 존재와 이성적 존재 사이에서 오고가는 다이알로그(대화)"라고 말했다.


결국 각자의 자존을 지키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바로 '소통'이라는 얘기다. 자신의 남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혼자 절제된 태도를 지키며 남은 글을 써내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또 "나의 삶과 글이 이 세계와 직접 맞부딪치는 대목을 표현하고 써내는 것이 목표인데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인간과 세상 사이의 매체, 언어, 매스컴, 기호, 상징, 컴퓨터와 같은 장애물이 직접성의 관계를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장애물을 모조리 걷어내고 세상의 실체와 직접 소통하면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그는 "허영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단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소통의 문제는 인간들 사이의 '약육강식'문제로 넘어갔다. 이날 한 학생이 "지금 젊은이들은 야만적인 적자생존의 세계에 살고 있는데 야만성의 꼭대기에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대안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자 김 작가는 고통스러운 질문이라며 입을 열었다.


그는 "대형 슈퍼마켓이 들어오면 동네슈퍼는 문을 닫아야하는 것이 약육강식의 질서"라며 "악과 폭력의 질서가 약육강식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약자로 살기위해서 자신의 살점을 강자에게 내줘야 한다면 인간이 아니고 개나 돼지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 약육강식의 질서에 짓밟히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생각을 내놓았다.


그는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먹을 때는 완벽하게 공정한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강자와 약자가 공정하게 게임했을 때 결과는 약육강식이 된다는 것이다. 이어 김 작가는 "시장의 균형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는 하지만 시장 자체는 정글이며 공정한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 수 있고 불공정한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여러분은 이미 강자의 대열에 편입된 것"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만 조금씩 조금씩 해결해 나가야한다"고 덧붙였다. 약육강식의 문제에는 아무도 해답을 줄 수가 없고 개개인이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한편에서 이 같은 모습이 삶의 한 본질이라는 점을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강연을 통해 그는 "이 세상의 야만적인 구조, 착취, 차별, 비리, 모순, 약육강식 속에서 지지고 볶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한다고 할 때 악과 폭력을 함께 말할 수밖에 없다"며 "야만성과 폭력과 악의 구조를 잘라내고 아름다움만 얘기하면 그것은 무가치한 아름다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날 강연은 숭실대 인문대학(학장 조규익)의 초청으로 열렸다.




김도형 기자 kuer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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