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사-영업ㆍ다국적사-제품 윈윈전략
-매출 늘지만 판매대행 전락 우려도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국내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간 짝짓기가 열풍 수준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제품력'과 국내사의 '영업력'을 합해 겉으론 '윈-윈' 관계로 보인다. 제약업계에 일반적 관행이긴 하지만 지난 몇 년새 이 전략이 갑자기 각광 받기 시작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에만 국내사와 다국적사 간 전략적 제휴가 5~6건 체결됐다. 지난달 녹십자는 한국아스트라제네카와 고혈압약 '아타칸' 공동 판매계약을 맺었다. 같은 시기 유한양행도 한국베링거인겔하임과 진통제 '이브퀵' 판매계약을 맺었고, 한독약품은 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의 제네릭 항암제 4개 제품에 대한 마케팅 및 판매를 맡기로 했다.
이 전략을 주력 비즈니스 모델로 삼고 있는 대웅제약 역시 한국얀센의 진통제 '울트라셋ER정'의 국내 판매를 위한 제휴를 맺었다. 앞서 한미약품은 박스터코리아와 영양수액제 판매계약을 맺고 올 1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다국적사 입장에선 영업인력을 채용하지 않으면서 판매량을 늘리고, 국내사는 연구개발 없이 검증된 신약을 팔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형태는 국내사가 작은 병ㆍ의원을, 다국적사가 대형병원의 영업을 맡아 역할을 나누는 식이 일반적이다. 애초 종합병원에 집중하던 다국적사들이 동네 병원시장까지 넘보게 된 때문인데, 여기에는 전 세계적인 신약개발 기근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새로 개발한 약은 없고 보유 중인 신약의 특허는 순차적으로 만료되는 상황에서 국내사와의 협력을 통한 동네병원 공략을 '돌파구'로 택한 것이다.
국내사 입장에선 손쉬운 매출증대 외에도 다국적사의 학술마케팅 능력과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향후 국내사도 신약을 개발하고 의사들을 상대로 학술 마케팅을 할 텐데 장기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미리 습득하겠다는 것이다.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다국적사와의 공동마케팅, 판매제휴는 신약 개발을 위한 최소한의 외형성장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며 "기존 영업조직을 활용해 매출 성장도 가능하고 신 사업부문 진출에도 도움이 되니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장기적으로 국내사에게 별 득이 되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장기적 체질개선은 등한시 한 채 결국엔 '수입대행업체'로 머물게 될 것이란 우려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신약 연구개발비를 만들고 매출을 맞추려는 일종의 고육책으로 볼 수 있다"며 "이런 유대관계를 해외시장으로까지 확대하는 등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국내 기업은 판매대행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다국적사가 특허 만료 직전에 국내사에게 제품을 넘겨주는 형태도 최근 유행하고 있는데, 소위 '리베이트' 시장에선 국내사끼리 경쟁하고 다국적사는 뒤로 빠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내사가 시장을 개척한 다음 다국적사가 판권을 회수해 과실을 따먹을 우려도 있다. 이럴 경우 급작스런 매출 감소는 물론 회사 존립자체가 흔들릴 위험도 크다. 일부 제약사들의 도입약 매출비중은 전체 매출의 50%에 육박하고 있다.
정효진 한화증권 연구원은 "국내 제약사가 신약개발로 가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라 잘못된 선택이라 할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결코 바람직한 모델은 아니다"며 "신약 도입 판매에만 너무 의존하지 말고 연구개발 능력도 길러야 회사 체질이 강해지고 서로 윈윈전략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혜정 기자 pa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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