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어린왕자를 보면 여우의 가르침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아'. 이직 시장도 마찬가지다. 종이 위에 적힌 화려한 경력과 면접에서 보인 멋진 화술을 넘어 더 중요한 게 있다. 후보자의 내면, 본성이다. 예컨대 회사의 자금을 관리할 회계 관리자를 선발하는 데 실력만 따져볼 순 없는 일이다. 외부 유혹이나 자금 횡령 등의 수렁에 빠져들지 않을 정도의 도덕성을 갖췄는지가 중요하다.
이처럼 후보자의 속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평판조회다. 평판조회는 경력이직 시장을 중심으로 널리 자리잡고 있는 추세다. 헤드헌팅 업체 커리어컨설팅에 따르면 지난해 평판조회 의뢰 건수는 전년대비 배 이상 뛰었다. 윤승연 커리어케어 상무는 "평판조회를 진행해본 업체들의 반응이 좋다"며 "점차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0페이지 보고서가 수백만원"=평판조회의 시작은 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내려줄 지인, 소위 레퍼리(referee)를 찾는 일이다. 특정 후보자에 대한 평판 의뢰가 들어오면 헤드헌팅 업체는 레퍼리 명단을 추린다. 자체 보유하고 있는 인물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출하는 경우도 있고 적합한 인물이 없는 경우 직접 찾아 나설 때도 있다.
레퍼리 구성은 후보자의 상사, 동료, 부하 등으로 다양하게 한다. 한 쪽에 치중된 레퍼리 집단은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직급별로 해당 후보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상무는 "상사는 좋게 평가하는 반면 동료나 후배는 박하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며 "레퍼리를 최대한 골고루 구성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조회는 보통 유선으로 이뤄진다. 주로 업무능력, 리더십, 사회성, 인성 등의 항목으로 나눠 후보자에 대한 평을 듣는 식이다. 레퍼리에 따라서는 유선 상으로 답변을 거부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직접 찾아가서라도 답을 듣는다.
후보자가 옮겨갈 직급이 임원급이냐, 실무진이냐에 따라 질문 문항이나 초점 대상이 달라진다. 이은아 커리어케어 과장은 "임원은 상대적으로 도덕성이 강조되는 등 직급별로 중요하게 보는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들을 기반으로 10페이지 안팎의 평판조회 보고서가 작성된다. 소요되는 기간은 보통 1주일 정도, 비용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수백만원 선이다.
평판조회 결과가 절대적인 건 아니다. 외국계 대기업은 A사는 타 기업에서 일하던 B임원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평판조회를 실시해 보니 '마귀같은 여자', '배려라곤 없다' 등 혹평 일색으로 나타났다. A씨의 업무 스타일이 앞뒤 가리지 않고 몰아치는 성향이라는 평이었다. 그러나 A사는 B임원을 영입해 왔다. "그 정도 평을 들을 정도라면 업무 추진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이처럼 평판조회 결과는 요지경이다. 혹평으로 나타났는데 채용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호평 일색이었는데 채용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회사마다 후보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윤 상무는 "회사에 따라 기업 문화가 있게 마련"이라며 "회사 입장에 따라 같은 평판조회 결과라도 받아들이는 태도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평판관리가 스펙관리보다 더 힘들어"=그렇다면 이직을 원하는 직장인이 평판조회를 대비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우선 직장생활을 하며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10명이 하는 칭찬보다 1명이 하는 혹평이 더 크게 들린다. 특히 여러 후보를 놓고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혹평은 해당 후보자에 대한 신뢰를 낮추는 요인이다. "후보자와 다시 한 번 조직에서 같이 일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레퍼리가 "No"라고 답한다면, 이직 여부에 결정타다.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채널을 다양화할 필요도 있다. 직장 내에서는 물론 직장 밖에서도 끊임없니 동료, 부하 직원 등과 만나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켜야 한다. 예컨대 상부에서 부당한 지시가 내려왔을 경우 충분한 해명이 없다면 부하 직원은 오해할 수밖에 없다. 굳이 받을 필요 없는 오해와 불신을 피하는 게 좋은 평판관리의 지름길이다.
평판조회 결과 발생하는 결격사유로는 금전문제와 사생활 문제가 가장 많다. 이직을 염두에 둔 직장인이라면 이 두 가지 부분을 가장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외국계 금융인 A씨의 경우 스펙이나 경력은 나무랄 데 없이 좋았지만 사내 평판이 안 좋았던 경우다. 평소 직장 동료들에게 돈을 빌려 개인 투자를 일삼았던 것. 국내 주요 금융회사에 여러 차례 지원했지만 A씨가 번번이 탈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윤 상무는 "평판관리는 바람직한 조직 생활 내지는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한 기본"이라며 "평판관리가 스펙관리보다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종 기자 hana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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