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어제 4개월여 동안 한반도 전역을 휩쓸다시피 한 구제역의 경보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낮췄다. 지난해 11월 말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후 116일 만에 사실상 구제역 종식을 선언한 셈이다. 정부는 종식 선언과 함께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 방안'을 내놓았다. 348만여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면서 축산업이 붕괴 위기에 처하고 피해 규모가 3조원에 이른 국가적 재앙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다.
방역 시스템 개편의 핵심은 초기 대응의 강화다.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에는 초동 대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인 만큼 당연한 조치다. 발생 즉시 위기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을 발령하고 네덜란드의 '일시정지(stand still)' 제도를 본 따 전국의 분뇨ㆍ사료차량의 이동을 통제하기로 했다. 특히 가축 질병 발생국을 다녀 온 축산 관계자뿐 아니라 농가를 방문한 일반인도 검사와 소독을 받도록 하는 등 상시 검역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밀집 사육'의 대안으로 검토됐던 사육 마리 수 총량제가 빠진 것은 문제다. 좁은 공간에 사육 마리 수만 늘리는 공장식 밀집 사육은 가축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질병을 확산시키는 등 구제역 재앙의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다.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산란 닭 한 마리의 사육면적이 A4 용지 한 장에도 못 미치고 새끼 돼지는 4~5장 면적에 지나지 않는 현실에서는 재앙을 비껴가기 힘들다. 축산농가의 반발이 있더라도 밀집 사육 환경은 확고한 의지로 개선해야 한다. 살처분 위주의 방역과 '백신접종 청정국'으로 갈 것인지 '백신 비접종국'으로 갈 것지에 대해 결론내지 않은 것은 아쉽다. 빠른 시일 내에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방역 체계 개편이나 축산업 선진화 방안은 재앙 재발 방지를 위한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제대로 실천하느냐다. 정부는 2003년에도 구제역 백서를 통해 방역체계를 개선했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발생 5일 후에야 대응에 나서는 등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매뉴얼은 있지만 실천은 뒤따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황식 총리는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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