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기술·고유모델 개발 밑걸음
현대·기아차 세계 빅5로 발돋움
현대중공업 글로벌 1위 자리매김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 세상을 떠난 지 꼬박 10년이 지났다.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일궜던 '현대'라는 나무는 그 뿌리를 더욱 탄탄히 하고 열매를 맺었으며 빠른 속도로 커나가고 있다. 현대는 국가 경제에 있어 거대한 고목이 됐다.
현대자동차는 기아자동차와 함께 세계 5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발돋움했고, 백사장 사진으로 차관을 빌려 시작한 현대중공업은 어느덧 세계 1위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현대건설은 현대의 모태로, 건설업계 1위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 명예회장 타계 6개월 전에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했다. 현대차 역시 꼬박 10년의 세월을 보냈지만 그 성장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파른 모습이다.
2000년 8월3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당시 현대차 소그룹에 대해 계열분리를 승인했을 때 계열사는 10개였지만 지난해 말 기준 40여개로 3배 이상 늘었다. 최근에는 현대건설을 인수해 계열사를 추가했다.
재계서열도 분리 당시 5위에서 현재는 삼성에 이어 2위로 올라서는 등 우리나라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룹의 대표기업인 현대자동차는 계열분리 이듬해인 2001년 매출액이 22조5050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36조7694억원으로 성장했다. 당기순이익도 1조1653억원에서 지난해에는 5조267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품질 뿐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호평도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시장에서는 수출 25년 만에 누적판매대수 1000만대 돌파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이 같은 양적, 질적 급성장은 정몽구 회장의 경영능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선대 회장 때부터 이어져온 '뚝심'과 '자체기술 및 고유모델 개발'이라는 밑거름이 없었으면 힘겨웠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정 명예회장은 건강한 신체와 긍정적인 생활철학, 창조성과 혁신성, 결단력과 리더십, 성실과 신용, 강인한 정신력과 높은 성취욕구 등 성공한 기업가의 자질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100% 우리의 노력으로 국산차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것만이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단추를 잘 꿴 게 초석이 됐다는 얘기다.
결국 1976년 1월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인 '포니'가 탄생했다. 만약 그때 그가 국산 고유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면 아마도 현재 한국의 자동차 공업수준은 외국 자동차의 조립생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세계 5위'라는 현대차의 신화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2009년은 현대차의 분수령이었다. 30년 이상 이어온 값싼 이미지에서 양질의 차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라크루즈와 제네시스 출시를 전환점으로 고급차 메이커로서의 이미지를 쌓아 가고 있을 무렵, 제네시스가 그 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2009 북미 올해 최고의 차'에 선정됐다. 이어 제네시스와 에쿠스에 탑재되는 타우엔진이 워즈오토의 '10대 엔진'에 뽑히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후 분위기는 승승장구였다. 미국에서 호평은 물론이고 독일의 아우토빌트지에서 실시한 '2010 품질조사'에서도 독일 내 20개 메이커 중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벤츠ㆍBMWㆍ아우디ㆍ폭스바겐은 물론 도요타ㆍ혼다의 일본 메이커들도 제치는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정 회장의 뚝심은 선친과 꼭 빼닮았다. 한 번 결정하면 우직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나 충성심과 정직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도 똑같다. 덕분에 정 회장은 지난해 초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자동차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자동차산업 공헌상'도 받았다.
지난 10년의 성장을 유추하면 현대차의 미래 역시 긍정적이다. 그동안 축적돼 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질적 성장을 이룰 도약을 시작했다. 반응도 좋다. 전세계 국가들이 현대차에 공장 건설을 요청할 정도다.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차와 함께 현대의 대명사로 현대중공업이 꼽힌다.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의 조선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1위 업체인 현대중공업이 있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화로 조선 산업을 일으켰다. 자동차, 건설과 함께 정 명예회장의 3대 작품으로 꼽힌다.
조선과 얽힌 정 명예회장의 일화는 익히 알려질 정도로 유명하다. 차관을 도입하기 위해 영국으로 날아가 500원짜리 지폐에 있던 거북선을 제시하는 임기응변으로 성사한데 이어 그리스에서는 백사장 사진만으로 선박을 수주했다. 기적 같은 일이다.
그의 노력으로 조선 산업은 반도체와 더불어 수출 1위를 다투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했다.
현대중공업은 정 명예회장이 가꾼 기반을 바탕으로 2000년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매출액은 2005년 10조3000억원으로 처음 10조원을 넘어섰다. 불과 4년 만인 2009년에는 21조1000억원으로 2배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22조4052억원 매출과 3조439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또 1974년 1억달러의 수출을 기록한데 이어 1983년에는 10억불 수출탑을, 2007년에는 100억불 수출탑을 받았다. 2009년에는 150억불 수출탑을 수상했으며, 올해는 수출 200억불 돌파가 예상된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춘이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에서 현대중공업은 2007년 422위로 처음 이름을 올린 뒤 지난해에는 375위로 상승했다.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1월 선박 인도 누적규모가 1700척을 기록했고 다음 달에는 유례없는 1억GT(총톤수) 인도라는 대기록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엔진기계는 지난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형엔진 생산 누계 1억마력을 돌파했다.
현대중공업은 정 명예회장이 등장하는 TV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회사 이미지와 정 명예회장이 부합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향후 사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정 명예회장의 초심과 경영 리더십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겠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들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조선 뿐 아니라 종합 중공업 회사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오지, 중동의 사막, 남미 우림까지 전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이들 지역에서 총 170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육ㆍ해상 플랜트 공사를 수행하고 있다.
해외에 19개 지사와 19개의 법인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오는 2016년까지 지사와 법인을 총 85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올해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중점 추진하고 있는 태양광ㆍ풍력사업을 전담하는 '그린에너지사업본부'를 신설해 지난 1994년부터 17년 동안 운영해왔던 6개 사업본부체제를 7개로 확대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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