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20년 겪은 일본의 임대주택시장
국내 임대사업에 모델 제시… “한국도 월세 수요 늘 것”
우리 주택 시장은 일본의 10~15년 전 모습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저출산, 고령화 등 1~2인 가구가 증가하는 인구 패턴이 일본을 따라가며 주택에 대한 임대 수요가 늘고 있는 것. 2009년부터 시작된 전세 대란은 늘어나는 임대 수요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일본의 임대 주택은 전체 가구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파이가 크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전세 개념이 없는 월세 개념의 임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고령 인구 및 단카이 쥬니어(1970년대 초 2차 베이비붐 세대) 세대가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자리 잡으며 임대 주택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임대 주택 시장이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일찌감치 도입된 정부 정책의 영향이 크다. 이미 우리나라보다 먼저 시작된 인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에 걸맞은 주택 계획을 세운 것이다.
임차·임대인 동시 보호 정책적 대응
따라서 일본 임대 주택 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임차인과 임대인을 모두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다. 일본은 1960년대 말부터 차가법(借家法)을 시행했다.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차가법은 임대인이 임의로 임대료를 지나치게 올리거나 계약 기간 종료 전에 세입자를 내보내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다.
만약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려 받으려면 주변 지역에 형성된 시가 이하여야 한다. 계약 갱신도 세입자가 원하는 이상은 거부할 수 없다. 다만 임대인에게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거부할 수 있다. 이마저도 법원에서 정당한 사유에 관해 판단하는 구조적 절차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차가법에도 취약점은 있었다. 임차인만을 우대하다보니 임대 사업자가 자금을 많이 들여 질 좋은 임대 주택을 공급하려 하지 않았던 것. 임대인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감내하면서까지 투자에 많은 비중을 둘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정부는 민간 임대 사업자들의 질 좋은 임대 주택 공급을 유도하기 위해 정기차가법(定期借家法)을 도입했다. 정기차가법은 계약 시 당사자 간에 계약 기간을 정해야 하며, 중도에 기간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와 동시에 도심 재개발 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김 연구위원은 정기차가법 도입에 따른 효과가 상당히 크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임대 계약에 주간, 월간 단위의 유형이 나타났고 노인 등 특수한 계층의 요구를 반영해 다양한 옵션의 임대 주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량 임대 주택도 늘어나고 있다. 고령자용 우량 임대 주택은 긴급 시 대응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부가 서비스 제공 및 사회복지시설을 마련한 임대 주택을 말한다.
김 연구위원은 일본의 사례에 빗대어, 우리나라 일부 국회의원들이 도입을 주장하는 임대료 상한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늘어나는 임대 수요자에 충분한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새 비즈모델 등장… 전문관리 회사도
일본에는 임대 사업이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정착돼 있어 민간 사업자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왔다. 공공 임대 주택 수요가 감소해 정부 공급 임대 주택은 줄어드는 반면, 민간업체가 공급하는 양질의 임대 주택은 늘고 있다.
특히 도심권의 수요층이 증가하자 소형 임대 주택 전문 관리회사가 등장하며 체계적인 임대 주택 시장이 확대됐다. 소형 주택 임대 전문 관리회사는 레오팔레스21, 세끼쓰이 하우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레오팔레스21은 지난 2월 한국 임대차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레오팔레스21은 일본에 약 40만호의 임대 주택 사업을 벌이고 있는 회사다. 계약 기간이 2주부터 1달까지며 보증금이 없어 일반 임대 주택에 비해 초기비용이 저렴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시장에도 일본 임대사업자의 손길이 뻗쳐오고 있는 것은 우리 전월세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일본에서는 도심권 오피스 시장 활성화로 역세권의 임대 맨션 사업이 활성화되며 고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성장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주요 역세권 주변의 임대 맨션 시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과거 10년간 연평균 9.0%의 높은 수익률을 창출해 왔다. 또 역세권 외 지역의 원룸 임대 수익 평균도 5~7%의 높은 수익률을 유지해 왔다는 분석이다.
이는 도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규모 오피스단지가 조성됨에 따라 직장인 수요가 늘자 근교의 임대 맨션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한 까닭이다. 박신영 LH(한국토지주택공사) 연구원은 “제로금리를 형성하는 일본에서 주택 임대 사업으로 2~3%의 수익만 얻어도 메리트가 있다”며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급 임대 주택도 많이 공급하는 등 시장 자체가 넓다”고 말했다.
또한 “일본인들은 월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월세 시장이 일본에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연구원은 우리나라에도 일본처럼 임대 사업을 정착시키려면 임대 사업자에 소득 공제 제도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임대 사업자가 질 좋은 임대 주택을 공급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일본의 정책 방향과 상통한다.
또한 손은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처럼 1~2인 가구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를 봤을 때 전세 보증금 부담이 없는 월세에 대한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소형 주택 시장을 위주로 월세 전환이 빨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일본 도심을 중심으로 쉐어형 주택이 늘고 있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쉐어형 주택은 부엌, 욕실, 화장실 등 공간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동생활형 주택이다. 주로 수요자들은 20대(62%), 30대(29%)의 젊은 계층으로 이뤄졌으며, 일반적인 계약 기간은 2년이다. 쉐어형 주택은 다시 게스트하우스, 하숙형 하우스, 룸 쉐어 등으로 세분화된다.
이코노믹 리뷰 백가혜 기자 lita@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