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제겐 아름다운 도전이었습니다. 위험하지만 끊임없이 도전을 해왔고 성취감으로 인한 만족도도 높습니다. '평양성'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놓고 웃음을 통해 현재를 바라본다는 의미로 찍은 영화입니다."
2003년 흥행작 '황산벌'의 속편 '평양성'을 내놓은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은퇴하겠다"는 강수를 두며 배수진을 쳤다. 최근 연출한 작품들의 흥행 부진을 씻어내겠다는 각오였다.
'평양성'은 신라와 백제의 마지막 전투를 그린 '황산벌'에서 8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함락시킨 평양성 전투를 그렸다. "역사책만큼 시나리오 소재를 찾기에 좋은 것은 없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온 이준익 감독은 다시 역사로 돌아가 또 한 편의 영화를 완성했다.
"서양에서는 '벤허'나 '십계' 같은 시대극을 진화시켜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영화도 역사를 통해 판타지까지 가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계단이 필요합니다. '평양성'은 계단인 거지요. 후배 감독들이 역사라는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사유하며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를 내놓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양성'은 미래 가치를 여는 영화입니다."
34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황산벌'과 달리 '평양성'에는 57억 5000만원이 쓰였다. 8년간의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이준익 감독의 계산이다. 제작비 규모는 크게 늘리지 않았지만 볼거리는 훨씬 풍성해졌다. 그러나 그는 시각적인 것보다 풍자와 해학에 집중할 것을 주문한다.
"이 영화에는 개그 프로그램의 말초적인 웃음은 별로 없습니다. 현실풍자를 통해 얻는 웃음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쌀 자랑하고 단체로 노래하는 장면이나 동물을 날려 보내는 장면이 황당하게 보일 수 있지만 등장인물들 사이의 심리가 살아있기 때문에 어색하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8년 전 '황산벌'을 찍으면서 언젠가 속편을 찍을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그는 "확신까지는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하게 될 것 같았다"며 "영화 속 시간의 흐름처럼 우연찮게 8년 만에 내놓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평양성'과 '황산벌'이 중첩되는 지점은 '민초의 시각으로 바라본 역사'와 '현실인식을 은유적으로 담은 풍자와 해학'일 것이다. 전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백제 병사 거시기(이문식 분)는 신라군으로 차출돼 고구려에 포로로 잡힌다. 권력자를 비판하고 민중의 요구를 소리치는 거시기의 목소리는 이준익 감독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이기도 하다.
"피지배자의 강한 주장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살아나도록 했습니다.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한 영웅주의에 휩쓸리지 않도록 한 것이지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모든 인물들의 존재를 소중하게 다뤘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미덕일 것입니다. 특히 거시기의 존재는 영화의 희망을 드러냅니다."
'평양성'은 명백하게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다. 설득이라기보다는 제시에 가깝다고 이준익 감독은 설명했다. 신라가 고구려에 쌀가마를 날려 보내자 고구려가 신라에 보복하는 장면이나 연개소문의 두 아들 남생(윤제문 분)과 남건(류승룡 분)의 대립을 그린 부분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넌지시 얘기한다. 민초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권력자의 모습은 '현 정치권을 향한 바람'처럼 보인다.
"'평양성'은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입니다. 정치적 메시지가 위험하다고 생각할수록 도전해야 합니다. 웃음의 미학이란 권력을 비판하는 풍자와 조롱 속에서 빛이 난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이 영화에 담긴 정치성이 불온하거나 불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영화를 통해 가르치려고 하지는 않아요. 단지 던져줄 뿐이죠. '황산벌'이나 '왕의 남자'에서도 권력을 비판하는 풍자와 해학 속에서 웃음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평양성'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때문에 했다고 말했다. 절망적인 엔딩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껴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앞선 두 영화에 이어지는 3부작의 완결편 '매소성'이 제작될 수 있을지 여부는 '평양성'의 흥행이 결정지을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평양성'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다.
스포츠투데이 고경석 기자 kave@
스포츠투데이 사진 이기범 기자 metro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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