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안혜신 기자]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한때 '대영제국'으로 전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지난 2008년 프랑스에 국내총생산(GDP) 규모 5위 자리를 내준 이후 좀처럼 순위 탈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유럽 내에서의 발언권 또한 독일과 프랑스에 내준지 오래다. 내부적으로는 치솟는 물가와 늘어나는 실업, 더딘 성장에 시름하고 있다.
◆ 날씨만큼 '우울한' 영국 경제 = 영국 날씨는 우울하고 음산하기로 유명하다. 겨울이면 우산이 소용없는 안개같은 비가 자주 내린다. 우울한 것은 날씨뿐만이 아닌 듯하다. 영국 경제 상황도 날씨와 크게 다르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영국 언론인 데일리메일 온라인판은 영국 국가 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1조파운드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가구당 4만파운드(약 7000만원)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부채 뿐만이 아니다. 살인적이기로 유명한 영국 물가가 다시 한 번 영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영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3.7% 상승, 8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도 몇 개월째 정체상태다. 영국 통계청은 지난해 9~11월 실업자 수가 4만9000명 증가한 250만 명으로 최종 집계됐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16~24세 청년 실업자는 3만2000명 증가한 95만1000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1992년 이래 최고로 전문가들은 조만간 청년 실업자 수가 1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4·4분기 영국의 전체 실업률은 7.9%로 전분기와 변동이 거의 없었다. 같은 기간 20대 실업률은 20.3%로 집계됐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부가가치세 인상과 공공지출 감소가 이어지면서 향후 영국의 실업률이 9%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올해 전망도 '컴컴' = 올해 영국 경제는 부가가치세(VAT) 인상 등을 포함한 강도 높은 긴축정책 등으로 인해 더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오는 25일 발표되는 지난해 4·4분기 영국 경제성장률은 0.5%에 그칠 전망이다. 이는 직전분기 기록했던 0.7%보다도 둔화된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올해 GDP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2.3%에서 2.1%로 하향하기도 했다.
이는 유로존 최대경제국인 독일이 지난해 3.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올해 1분기 성장률 전망도 기존 1.8%에서 2.3%로 상향 조정한 것과 비교된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는 VAT 인상으로 인한 후폭풍이다. 영국 정부가 세수확보를 위해 올해 1월부터 기존 17.5%이던 VAT를 20%로 인상하면서 그 영향이 고스란히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애널리스트들은 장기적으로 체육관·휴대폰업체·레스토랑·상점 등의 소비자가격이 현재보다 5~8% 이상 인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들어 면화·에너지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점도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소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VAT인상 등의 조치가 물가인상을 추가적으로 부추기고, 이로 인해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이것이 다시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리라는 지적이다.
앤드류 굿윈 언스트앤영 어드바이저는 "영국 통화정책위원회는 이미 물가상승 등으로 인한 리스크를 잘 알고 있다고 본다"면서 "실질적으로 강력한 경기 회복세를 느끼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안혜신 기자 ahnhye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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