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영화 '황해' '아이들' 드라마 '싸인'.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극화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조선족 청부살인을 소재로 한 범죄 스릴러 '황해'는 현재 중국 연변에 사는 40대 중반의 조선족 여성인 리순복이라는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토대로 제작됐다.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 구남(하정우 분)의 아내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하정우가 연기한 구남의 실제 모델이 되는 중년 남성은 청부살인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해'에서 구남이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를 찾으러 다니는 이야기나 몇십만원의 돈을 받고 청부살인을 한다는 설정 등 많은 소재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제작사 측은 "실제 사건이 2000년대 중반에 벌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월 10일 개봉예정인 영화 ‘아이들'도 1991년 대구에서 발생해 2006년 공소시효 만료로 미해결 상태로 종결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바탕으로 한 실화극이다.
1991년 3월 개구리를 잡겠다고 나선 5명의 초등학생 어린이들은 그후로 종적을 감췄고 지난 2002년 싸늘한 유골로 발견됐다. 새카매진 가슴을 안고 있던 가족 뿐 아니라 '혹시나' 하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던 전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 하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사건은 종결됐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메가폰을 잡은 이규만 감독은 “이 사건에는 분명히 범인이 있다. 아이들은 타살됐다"며 "조사되지 않았던 부분도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또 다른 사건들과 슬픔들이 존재한다”며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을 밝혔다.
현재 인기리에 방송중인 SBS 수목드라마 '싸인'도 미제사건을 에피소드로 각색했다. '아이들'처럼 작정하고 해당 사건을 지목해 재조명한 건 아니었지만, 첫 회 나온 아이돌 스타 서윤형 살인사건은 지난 1995년 있었던 듀스 출신 김성재 사망 사고를 연상케했다.
고 김성재는 SBS ‘생방송 인기가요'에서 ‘말하자면’으로 화려한 솔로 데뷔를 한 뒤 이튿날 홍은동의 한 호텔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김성재의 오른팔에 28개의 주사바늘 자국이 있었고 강제투약에 대해 반항한 흔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당시 경찰은 약물을 과다투여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동물마취제 졸레틸이 검출됐고 김성재가 오른손잡이였다는 점으로 타살에 무게가 실렸다.
이에따라 당시 여자친구 김 모 씨가 동물마취제를 구입했다는 제보로 김 씨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고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하지만 곧이은 항소심에서 김 씨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아 김성재 의문사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반면 드라마 '싸인'은 12일 방송된 3회분에서 진범은 서윤형이 이별을 고한 데 앙심을 품은 전 여자친구와 소속사 대표, 그룹 동료, 코디네이터 등 4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1995년 당시 고 김성재 사건을 특종보도했던 김경만 전 SBS PD는 13일 자신의 블로그에 "SBS '싸인'을 보고 기사를 쓰고 싶었지만 사실 무서웠다"며 "우연 치고는 더럽게 이상하다. 모든 것이 다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진실은 아니란다. 드라마 '싸인'에서라도 진실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당시 느꼈던 참담한 심정을 고백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9년 개봉한 장근석 주연의 '이태원살인사건' 역시 지난 1997년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당시 사건의 피해자였던 23세의 청년 조씨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가 흉기에 찔려 숨졌다. 1997년 검찰이 에드워드 리(당시 18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고 패터슨(당시 18세)은 증거 인멸혐의로 8개월 간 복역 후 특별사면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죽은' 사람은 있어도 '죽인' 사람은 없는 답답한 현실과 대한민국 공권력의 한계를 드러낸 영화로 큰 관심을 모았다.
실제 사건을 극화가 러시를 이루는 배경은 역시 국민적인 관심이 뜨겁기 때문이다. 범인이 잡히지 않거나,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은 사망사고, 여기에 국가적으로 이슈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라면 이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었을 경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는 당연히 흥행력으로 이어진다.
지난 2003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5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불씨를 지피자 '그놈 목소리' '이태원 살인사건' 등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줄을 이었다. 대체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실제사건을 극화한 작품이 모두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은 미제사건 극화 작품은 여전히 팬들의 시선을 모은다. 사건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 내밀한 전개, 진범을 유추하는 과정 등을 밀도있게 펼쳐낸다면 이에 쏠리는 대중의 관심 또한 여전히 뜨거울 전망이다.
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 anju1015@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