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26달러로 58달러인 미국, 49달러인 유럽보다 떨어진다. 우리 기업의 국내 투자 유도를 위해 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이다.”
지난 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경제인 신년인사회에서 이명박대통령께서 건넨 ‘신년덕담’ 중 한 대목입니다.
똑같은 멘트는 7일 과학기술인 신년인사회에서도 나왔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데(나라)는 더 올라갈 데가 없는데, 우리는 생산성을 20%만 올려도 G7(주요7개국)을 넘어 G5(주요5개국)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한상의 신년인사회 현장에서 직접 듣고 있던 입장에서 이 대목은 게으른 국민들을 꾸지람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을 안하고 있다는 것처럼. (물론 이 대통령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는 조건을 달고 싶습니다.).
“본인과 기업인들이 연말연시 휴가도 못가고 일하고 있다. 지금 다른 나라 기업인들은 휴가를 가 있을 것이다.”라는 이대통령의 불공정한 노동(?) 취지의 발언과 함께 나온 이야기여서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년 전 미국 시카고에서 겪은 일입니다.
당시 집에서 직장까지 거리는 약 8마일(13km). 그런데 이 출근길 중 약 3마일 정도 도로보수작업이 시작됐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일반 보수작업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길어야 3~4개월이면 끝났겠죠.
하지만 이 공사는 해를 넘겨가며 만 1년을 넘게 지속됐습니다. 속으로 ‘정말 진하게 일 안한다”고 탄식했습니다. 도로는 매일 막아놓는데 일하는 근로자를 보지 못하는 날이 보는 날보다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노동생산성이 우리나라의 두 배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노동생산성은 단순히 말하면 노동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노동량과 그 결과로 얻어진 생산량과의 비율입니다. 몇가지 표현 방식이 있지만 국내총생산(GDP)를 취업자수와 평균근로시간을 곱한 값으로 나누면 노동자 한명이 같은 시간에 얼마나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가 보여줍니다.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동일한 양의 노동 투입으로 더 많은 산출물을 생산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다시 말해 동일한 산출물에 대해 더 적은 노동을 투입함으로써 노동비용 감소와 가격경쟁력 향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를 곱씹어보면 단순히 열심히 일해 생산량을 늘려야 노동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개념이 아닌 셈입니다.
장용성 연세대 교수는 이미 지난 2009년 한 칼럼을 통해 “한국처럼 연공서열에 의존하거나 혈연, 지연, 학연 등 능력 이외의 요인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인적 자원의 재배치가 훨씬 더디게 되고 결국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또 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는 설비 고도화, 장비의 첨단화, 국가간 인건비 격차 등 다양한 의견이 전문가 집단에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께서 알아줬으면 하는, 아니 이미 보고 받았을 지도 모르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한국의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생산성은 OECD 25개국 중 최하권입니다.
2009년 자영사업자 수는 487만4000명으로 작년 기준으로는 이미 자영업자 500만 시대를 개막했는지 모릅니다.
2008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자영업 비중은 31.3%로 OECD 평균 15.8%에 비해 약 두 배 가량 높고, 유럽연합 27개국의 평균 16.5%와 비교해서도 두 배에 육박합니다.
공식 월급 없이 가족을 돕는 무급가족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더 올라갈 수 밖에 없겠죠.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하지만 생산성이 낮을 수 밖에 없는 과당경쟁구조속에 500만명 가까이가 몸부림을 치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에서는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할인마트들이 아무 문제없이 저가피자나 치킨을 판매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이나 이마트의 저가피자 판매가 국론 분열까지 치닫게 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국 자영업자 상당수가 미국의 시급노동자보다 적은 수입을 올리는 실정일 것으로 추정합니다.(참고로 지난 2004년 미국 월마트 카트정리원의 시급은 8달러 정도였습니다. 당시 한화로 약 1만2000원.)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생산성이 높아야 기업인들이 국내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생각, 또는 기업인들의 생각에 전적으로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근로자가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산업의 구조적 문제입니다.
노동생산성 향상의 정답은 없습니다. 자영업의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지만 그 효과를 장담할 수도 없겠죠.
그러나 정답이 없어도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공정사회’, ‘근로자와 기업간의 동방성장’에 부합할 것입니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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