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화된 저축은행을 대형 금융지주사들이 인수해 구제해 주는 방안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우리, KB, 신한, 하나 등 4대 금융지주가 어제 저축은행 인수 의사를 비쳤다. 지난 5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저축은행 부실과 관련해 "나름대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고 기본방향은 이미 결심이 서 있다"고 말한 직후다. 은행들이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하면 부실 채권을 공적자금이나 예금보험기금 등을 통해 털어낼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은 일반에 이름이 꽤 알려진 대형 저축은행들이다. 이들 중 한두 곳이 파산할 경우 그 파급효과는 건전한 다른 저축은행뿐 아니라 금융권 전체를 흔들지 않을까 우려돼 왔다. 은행들이 인수하면 이 같은 위기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은행 쪽으로 부실이 넘어가는 꼴이다. 1974년 부실 상호신용금고를 은행이 떠안았다가 다시 부실화된 전례를 답습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
특히 저축은행 처리는 무엇보다 '대마불사'라는 구조조정의 악습이 재연되는 데 문제가 있다. 인수 대상이 자산 5000억원 이상 10여개 대형 저축은행들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평소에는 '부실 금융기관은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고 말하다가도 막상 급한 상황에 부딪치면 정부 돈을 풀어서 살려 왔다. 이러니 금융 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는 것이다.
더욱이 부실 원인과 책임 추궁은 생략되는 느낌이다. 저축은행 부실의 1차적 원인은 2006년 8월 윤증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현 기획재정부장관)이 저축은행에 대해 건별 대출상한선 80억원을 풀어준 탓이다. 저축은행들은 최대 5000만원 예금보장과 상대적인 고금리 덕에 몰린 돈을 주체하지 못하다 대출한도까지 풀리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너도 나도 나섰다. 그 결과가 동반 부실화다.
2008년 금융위기로 부실화된 저축은행들을 퇴출시키지 않고 대형 저축은행들이 인수토록 한 것도 정부의 실책이다. 자산 200억원당 본점 외의 지점을 1개씩 늘리도록 인센티브를 주면서 대형화를 부추긴 것이다. 그 부실 덤터기를 이번에 은행들에 떠안기려 하고 있다. 부실을 초래한 대주주들을 엄격히 문책해야 한다. 금융정책 당국의 책임도 무겁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