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권단은 자신이 세워놓은 원칙을 번복함으로써 일관되지 못한 태도를 보였고, 양해각서 체결 후에도 각서에 정해놓은 사항을 넘어서 해명 및 자료제출을 요구함으로써 혼란을 가중시켰다."
현대건설 매각과 관련해 엊그제 법원이 채권단의 손을 들어주면서 결정문과 함께 내놓은 '재판부의 소회'란 글의 일부다. 재판부는 비록 채권단이 현대그룹과 체결한 양해각서를 해지한 것이 적법하다고 결정했지만 그동안의 채권단 행태에 대해서는 준엄한 비판을 한 것이다. 해지 사태에 이른 데에는 원칙없이 무리한 요구를 한 채권단에 무거운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법원은 또 현대그룹에 "채권단의 요구가 정당한지를 떠나 신빙성 있는 자료를 제공해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에는 "채권단이 전적인 재량권을 갖고 있음을 확약했음에도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법리를 넘어서 이번 사태를 불러온 채권단, 현대그룹, 현대차를 바라보는 법원의 차가운 눈길이 와 닿는다.
돌아보면 현대건설의 매각 과정은 의혹 제기와 상호 비방, 협박과 반발로 얼룩진 한편의 '막장 드라마'였다. 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현대그룹은 항소할 뜻을 밝혔지만 사실상 잡았던 대어를 놓친 꼴이 됐다. 채권단이 서두르는 모양새를 볼 때 현대건설은 현대차로 넘어갈 공산이 커졌다.
그렇지만 남긴 상처는 크다. 채권단의 서두른 결정, 불분명한 원칙, 양해각서 체결 후의 우왕좌왕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법원 결정 후 현대차의 현대건설 인수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채권단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현대그룹에 상응하는 엄격한 검증과 투명한 매각 절차를 밟는 게 당연하다. 특혜시비가 제기될 소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금융당국은 차제에 초대형 인수합병(M&A)의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현대건설 사태를 혼란에 빠뜨리면서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린 채권단에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현대건설 사건을 맡았던 재판부 '소회'의 결론을 상기하기 바란다. "현대건설 사건이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형 M&A가 있을 경우 이해당사자들이 어떤 원칙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소중한 경험을 주었다는 것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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