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부활시켜 최저 비용으로 새 집처럼 변심
쓰레기더미에서 솟아난 미도아파트의 '기적'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어떻게 20년된 아파트가 살기 좋은 아파트 1등을?".
지난달 발표된 인천시의 2010년 살기 좋은 아파트 대상 심사 결과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 1990년 입주가 시작돼 완공된 지 2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인 계양구 작전동 소재 미도아파트가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과연 비결은 뭘까?
지난 4일 오후 체감온도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 속에서 이 아파트를 방문했다. 첫인상은 우선 4개동 480가구 밖에 되지 않는 초미니 단지에다 주택가ㆍ상가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아 보였다. 이 아파트가 인천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혔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하지만 단지 입구로 들어가면서부터 느낌이 달랐다. 새로 도색해 새 아파트처럼 보일 정도로 깔끔하게 단장된 외양, 잘 정리된 주차 공간, 단지 한 가운데에 새로 지은 경비 초소ㆍ관리사무소 등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이현주 관리소장의 입에선 뜻밖의 소리가 흘러 나왔다. "살기 좋은 아파트라면 요즘 새로 지은 최신형 아파트로 가보세요. 이 아파트는 그것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의 '살기 좋은 아파트'를 찾으려면 단지 내에 충분한 녹지ㆍ공원 공간을 갖추고, 주차장이나 각종 편의시설이 완비된 새 아파트들을 찾아가는 게 빠르며, 이 아파트는 그런 뜻에서 '살기 좋은 아파트'로 선정된 곳이 아니라는 이 소장의 설명이 뒤를 이었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아파트가 살기 좋은 아파트 1위를 차지한 이유는 뭘까?
그 대답은 곧 들을 수 있었다. 입주민들의 마음을 모아 요즘 도시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공동체 정신'을 되살려 냈고, 이를 바탕으로 최악의 아파트를 최저의 비용으로 하나하나 뜯어 고쳐 이제는 새 아파트 못지않게 살기 편한 곳으로 탈바꿈 시킨 공적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는 사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살기 불편한 곳으로 악명 높았다. 곳곳에 인근 주민이나 입주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여름이면 배수시설이 안 돼 지층은 물론 1층까지 상습 침수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낡은 아파트답게 급수 등 각종 시설도 낡아 입주민들의 불편이 심했고, 주차장도 비좁아 이웃끼리 싸우는 일도 잦았다. 무엇보다 입주민들은 각자 먹고 살기에 바빠 서로 관심이 없었다.
그랬던 아파트가 변신을 시작한 것은 김원구 아파트입주자모임 대표가 지난 2008년 취임하면서부터다.
김 대표는 통ㆍ반장 등 입주민들과 이 소장을 비롯한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마음을 모아 우선 아파트내 잔일과 궂은 일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처리하기 시작했다.
겨울 눈 치우기, 가로수 전지작업에서 시작된 공동작업은 단지내 쓰레기 치우기로 확대됐다.18년간 쌓인 쓰레기를 2개월 동안 직접 치웠다. 15t 트럭 17대 분량의 쓰레기가 치워졌다.
이러자 입주민들의 태도도 바뀌기 시작했다. 눈 치우기도 싫어하던 주민들이 이때부터는 공동작업이 있으면 방송해달라고 먼저 요청할 정도로 변했다.
주민들의 공동체가 부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동체 부활의 최대 성과는 지난해 여름이 오기 전 아파트 내에 수백미터의 관로와 26개의 집수정 등 배수시설을 묻은 공사였다. 철물점에서 사온 자재로 모두 주민들이 직접했다. 그 성과는 대단했다. 지난해 9월 내린 집중 호우로 작전동 일대 대부분의 주택들이 침수됐지만, 상습 침수 지역이었던 이 아파트는 멀쩡했다. 해마다 침수되던 1층 주민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좁아 터져서 입주민간 싸움이 수시로 일어났던 주차난도 단지내 어린이 놀이터를 줄이는 대신 주차면 52개를 늘려 해결했다.
수압이 낮아 수돗물 공급이 원활치 못했던 것도 층별 수압 개선 공사를 통해 해결했고, 화재감지기ㆍ소화전 등 소방방재시스템 교체, CCTV 설치 모두 아파트입주자모임과 관리사무소의 주도로 했다. 지난해 10월 실시된 외부 도색 등 2년여 동안 20여가지가 넘는 각종 공사가 진행됐다.
이렇게 해서 작전동 최악의 아파트였던 이곳은 새 아파트 못지않게 살기 편한, 깨끗하고 산뜻한 주거 시설로 변모했다.
돈이 많이 들었을 것 같다고? 천만에! 관리비 한 푼 안올리고 다 해결됐다.
모든 공사를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입주자대표, 통반장 등이 직접해 비용을 절약했고, 실제 비용은 아파트 부녀회를 해산해 재활용품 판매 수익금 등을 투명하게 관리하면서 모은 돈과 장기수선충당금ㆍ수선유지비 등으로 조달했기 때문이다.
이현주 소장은 "우리 아파트는 몇 년 전 만 해도 작전동 쓰레기가 다 모이는 곳으로 소문났었다"며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관리의 투명화 등을 통해 낡고 오래된 아파트들의 관리는 이렇게 하면 된다는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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