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성곤 기자]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 이후 여야의 대치전선이 명확했던 민감한 현안들이 모두 실종됐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청와대의 대포폰 사용 의혹은 여의도 정치권 최대 이슈였다. 또한 한나라당 내부에서 논쟁이 치열했던 감세철회 문제도 사라졌다. 아울러 여권 일각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개헌논의도 불씨가 희미해졌다. 한마디로 연평도 정국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불법사찰 논란, 北 연평도 무력도발에 실종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 이전만 해도 정치권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으로 소용돌이쳤다.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가 직접 나서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 미국의 워터케이트 사건과의 유사성을 경고하며 국정조사와 특검 추진을 요구했다. 특히 여권 내부에서도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은 검찰의 재수사가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불법사찰 논란은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로 한순간에 사라졌다. 손 대표는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진행 중이던 장외농성을 시작하자마자 접어야 했다. 민주당이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애를 썼지만 정국의 추는 이미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로 넘어가버렸다.
불법사찰 논란이 쏘옥 들어간 것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풍경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그동안 예결위에 출석한 이귀남 법무장관을 향해 청원경찰 입법로비 의혹은 물론 불법사찰과 대포폰 사용 의혹에 대해 맹공을 벌였고 이 장관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김태영 국방장관의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과 관련한 여야 의원들의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시달리며 이 장관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모습이다.
◆감세-개헌, 여권 최대 이슈도 잠복기 상태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로 감세철회, 개헌논의 등 주요 쟁점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갈등도 잠복기에 접어들었다.
한나라당은 우선 감세철회 문제와 관련, 지난달 24일 감세 정책의총을 열어 당의 입장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었지만 북한의 연평도 무력도발로 무기 연기됐다. 감세철회 문제는 쉽게 해답을 찾기 힘든 매우 복잡 미묘한 사안이다. 길게는 차기 대선 전략과도 맞닿아있는 반면 규제완화와 감세를 핵심으로 하는 MB노믹스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감세 정책의총이 어느 시점에 재개될 지 불투명하다.
개헌 이슈 또한 마찬가지다. 현행 헌법은 한계가 뚜렷한 만큼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원포인트 개헌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산돼왔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달 중순 서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종료 이후 개헌논의의 공론화 의사를 밝혔다. 친이계인 안경률 의원은 "당에서 논의를 시작해 국회에서 내년 4월까지만 통과시키면 국민투표를 30일 내에 해야 하니 내년 상반기 중에 개헌이 된다"고 강조했다. 상황은 불투명하다. 박근혜 전 대표는 물론 민주당 등 야권의 반대도 적지 않아 향후 정치스케줄을 감안하면 사실상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연평도 정국이 장기화되는 추세에다 연말 예산안을 둘러싼 다툼이 치열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을 해를 넘길 가능성이 적지 않다"면서도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는 내년 초에 재점화가 가능한 이슈"라고 진단했다. 이어 "감세논란 역시 차기 대권주자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또 불거질 수 있고 개헌 논의는 차기 국면이 본격화되면 힘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성곤 기자 sk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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