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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삼·이현승, 끝나지 않은 잔혹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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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삼·이현승, 끝나지 않은 잔혹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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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정든 친구도 언제든 적으로 돌변한다. 삼류 막장 드라마의 소재가 아니다. 잔혹한 프로야구의 세계다.

13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 5차전. 그라운드는 잔인했다. 서로 다른 유니폼. 그것이 문제였다.


삼성 장원삼과 두산 이현승은 1시간 30분여동안 머릿속에서 우정을 지웠다. 한솥밥을 먹었던 기억이 떠오를 때면 더 힘을 냈다. 떠오르는 기억은 애써 추억이라 여겼다.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었다. 상대를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냉정한 현실. 그래서 둘은 더 강해졌고 그 어느 때보다 투구에 집중했다.

두 선수는 이날 선발이 아니었다. 삼성과 두산은 각각 차우찬과 켈빈 히메네스를 선봉장으로 내세웠다. 에이스들의 맞대결. 하지만 공교롭게도 둘은 모두 조기 강판의 비운을 맛봤다.


차우찬은 1.2이닝동안 5피안타 2볼넷 5실점(5자책)했다. 초반 호투한 히메네스는 손가락에 생긴 물집으로 3.1이닝동안 4피안타 3실점하며 물러났다.


두산은 레스 왈론드와 고창성을 투입하며 5-3 리드 지키기에 나섰다. 하지만 둘의 투구는 김경문 감독의 기대에 어긋났다. 각각 1실점씩을 허용하며 5-5 동점을 허용했다. 반면 삼성은 배영수, 정현욱이 5회까지 매섭게 몰아붙이던 두산 타선을 무실점으로 봉쇄했다.


선동열 감독은 경기 전 “5-6점을 내는 팀이 이길 것”이라고 예견했다. 6회 이전까지 삼성은 4-5로 끌려갔다. 그의 말대로라면 더 이상의 실점은 곧 패배였다. 선 감독은 바로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선발 장원삼을 마운드에 투입했다.


장원삼·이현승, 끝나지 않은 잔혹한 승부


장원삼은 선 감독의 기대에 120% 부응했다. 오재원에게 중전안타를 허용했지만 나머지 세 타자를 땅볼 처리했다. 호투 덕일까. 삼성은 바로 다음 공격에서 힘을 냈다. 이영욱이 고창성을 상대로 적시 2루타를 치며 5-5 동점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김경문 감독의 차례였다. 고창성이 조동찬에게 볼넷까지 내주며 흔들리자 그는 바로 중간계투로 이현승을 마운드에 올렸다. 이현승은 신명철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6회를 매조지었다.


7회부터 경기는 팽팽한 투수전으로 바뀌었다. 장원삼은 직구와 슬라이더 등을 구사하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나갔다. 피칭은 정교하고 공격적이었다. 최준석에게 볼넷 하나를 내줬을 뿐 연장 11회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선발로 나서 2이닝 7피안타 2실점으로 조기 강판됐던 3차전과 판이하게 다른 투구 내용이었다.


이에 맞서는 이현승의 피칭도 만만치 않았다. 10회 1사까지 3.1이닝동안 단 한 개의 안타만 내줬다. 구위는 이전 경기와 크게 달랐다. 포스트시즌 최고인 시속 147km의 강속구를 선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무려 7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넥센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투구였다.


달라진 투구. 여기에는 숨은 원동력이 있었다. 둘은 입단 동기다. 2006년 현대에서 함께 프로무대를 밟았다. 대졸신인에다 1983년생으로 나이까지 같은 그들. 비슷한 처지에 두 새내기는 금세 친구가 됐다.


이들의 우정은 강하고 끈끈했다. 계기가 있었다. 둘은 함께 막내 생활을 했다. 빨래 수거 등 귀찮은 일을 서로 사이좋게 나눴다. 연습서는 서로의 볼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가졌다. 이는 경기 중에도 마찬가지. 다른 선수들의 투구를 바라보며 살아남는 법을 의논했다.


장원삼·이현승, 끝나지 않은 잔혹한 승부


야구장을 빠져나와도 둘은 함께였다. 늦은 밤 함께 야식을 먹었다. 가끔은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삶을 위로했다. 훈련부터 퇴근까지 하루의 절 반 가량을 함께 보낸 셈.


어느덧 장원삼과 이현승은 히어로즈로 간판을 바꾼 팀의 대표투수로 자리매김했다. 빼어난 성적에 이들은 마일영과 함께 팀의 ‘좌완 3인방’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그 명예로운 애칭의 수명은 길지 않았다. 지난해 열악한 팀 사정으로 각각 다른 유니폼을 입으며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장원삼은 2008년부터 영입에 공을 들인 삼성으로 이적했다. 이현승도 금민철과 팀을 맞바꾸며 두산 선수가 됐다.


순식간에 다른 유니폼을 입게 된 두 선수. 하지만 성적에서 명암은 크게 엇갈렸다. 장원삼은 정규시즌 13승(5패) 평균자책점 3.46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반면 이현승은 스프링캠프서 부상을 당해 2군으로 떨어지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정규시즌 성적은 3승 6패 평균자책점 4.75. 야심차게 영입한 구단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결과였다.


플레이오프서 장원삼과 이현승은 서로 적이 되어 재회했다. 당초 옛 동료 간의 라이벌 구도에 관심을 갖는 이는 많지 않았다. 정규시즌 쌓아온 위상이 크게 달랐던 까닭이다. 보직에서도 선발과 중간계투로 차이가 있었다.


장원삼·이현승, 끝나지 않은 잔혹한 승부


하지만 4차전까지 무게중심의 흐름은 이현승 쪽으로 더 쏠렸다. 장원삼이 3차전 선발로 나서 2이닝 2실점하며 조기 강판됐기 때문이다. 반면 이현승은 좌완 릴리프로 4경기에 모두 나서 3.1이닝 2실점(1자책) 평균 자책점 2.70을 기록했다. 두산의 필승 계투조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리고 맞은 운명의 5차전. 둘은 팀의 운명을 짊어지고 6회부터 선발 맞대결과 같은 혈투를 벌였다. 전광판에 양 쪽 하단에 각각 새겨진 두 선수의 이름에 관중석은 일순간 웅성거렸다. “넥센 출신 선수들 간의 대결이네”, “잔인하다. 잔인해”라는 말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두 선수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 뒤 장원삼은 “전광판을 보며 느낌이 이상했다”며 “(이)현승이가 충분히 신경 쓰였다.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보다 더 공격적으로 피칭을 했다”고 덧붙였다.


승부를 향한 다부진 각오는 이현승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산 한 선수는 “더그아웃에서 끝까지 투구를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연거푸 밝혔다”며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은 듯 했다”고 전했다.


삼성은 연장 11회 접전 끝에 6-5로 승리했다. 장원삼은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이현승과 맞대결까지 이긴 건 아니었다. 김경문 감독은 연장 10회 이현승 대신 임태훈은 마운드에 올렸다. 절친 간의 승부는 그 끝을 볼 수 없었다. 선의의 경쟁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
사진 한윤종 기자 hyj0709@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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