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1983년 여름. 온양(현 아산)역에 당도한 김태원(45)은 숨이 '턱' 막혔다.
더운 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눈앞의 풍경이 낯설었다. 바닷가에서나 볼수 있는 촌스러운 잿빛 건물들. 그 뒤로는 온통 허허벌판이었다. 걸음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낙원상가를 돌며 어렵게 구한 첫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김태원은 내려놓았던 기타 가방을 다시 짊어졌다.
역사를 빠져나와 향한 곳은 온양나이트클럽이었다. 인근은 네온사인 숲이었다. 그가 살던 서울과 조금 닮았다. 불현듯 친구들이 떠올랐다. 추억의 책장은 아니었다. 대학교정에서 낭만을 만끽할 그들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김태원도 대학생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두고 팔레트와 물감을 구했다. 목표는 미대 입학.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 한번 마음을 먹고 그림에 전념하니 일취월장이었다. 화실 선생님은 그림을 볼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입학은 떼어 놓은 당상인 듯 했다. 그러나 꿈도 꾸기 전에 해몽이었다. 학력고사를 망치며 보기 좋게 낙방했다. 김태원은 좌절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갈팡질팡하던 그에게 실마리를 제공한 건 아버지였다. 낙담과 실의의 나날을 보내는 아들의 손에 지문 하나 묻지 않은 새 기타를 쥐어줬다. 기타를 처음 접한 뒤로 6년을 기다려 받은 졸업선물이었다.
아버지의 선물은 온양나이트클럽에서 위용을 과시했다.
화려한 무대와 뜨거운 반응. 김태원은 클럽에서 일하는 외가 사촌형들처럼 자신이 프로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희열은 길지 않았다. 문제가 생겼다. 팀의 리더가 업소로부터 받은 계약금을 들고 야반도주한 것이다. 영업주는 남아있는 애꿎은 멤버들에게 잘못을 캐묻고 악기들을 강탈했다. 김태원의 기타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선물과 그렇게 이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행방을 모르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찾고 싶다."
해고당한 김태원은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이트클럽을 빠져나왔다. 다시 온양역이었다. 처음 발을 딛었을 때처럼 숨이 막혔다. 열기는 없었고 모든 풍경은 익숙했다. 변한 건 자신의 처지뿐이었다. 기타는 없지만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은 그때와 똑같았다. 올라탄 서울행 버스에서 김태원은 주머니를 뒤적였다.
꼬깃꼬깃해진 지폐 뭉치…. 싸구려 중고 기타를 구하기에는 충분한 돈이었다. 김태원은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버스는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유유히 온양역을 빠져나갔다.
김태원 3번은 내일 오전 9시이후에 연재됩니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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