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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첨단금융과 19C 금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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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숙혜 기자] # "배 한척을 사들여 무역업을 하려고 합니다. 지중해 건너편으로 가서 옥수수를 팔아 이윤을 남기면 이자까지 쳐서 상환하죠."


금융회사는 선박과 옥수수를 담보로 대출을 내준다. 디폴트가 발생하면 배와 물건을 금융회사가 인수하겠다는 것.

무역업자는 대출금의 반값에도 못 미치는 낡은 배 한 척과 옥수수를 구입한다. 배를 띄운 후 바닥에 구멍을 뚫어 서서히 가라앉게 한다. 배가 침몰할 때쯤 구명보트를 타고 되돌아와 금융회사에 디폴트를 선언할 생각이었던 것.


깜찍하게 잔머리를 굴린 주인공은 그리스 악당 헤게스트라토스. 기원전 300년에 발생한 이 사건은 역사상 최초의 금융사기로 기록됐다.

이후 금융산업의 발전과 함께 갖가지 형태의 사기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골드만삭스의 '아바커스'와 금융위기의 원흉 부채담보부증권(CDO)의 파괴력을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한 미국 감독당국은 구조적인 난해함을 핑계로 내민다. 거래 구조가 복잡한 것이 사실이지만 소위 '첨단 금융'이 태동하기 전에도 월가에는 금융사기가 꼬리를 물었다.


철도회사 경영자 겸 투자가인 제이 굴드(Jay Gould)와 투자가 제임스 피스크(James Fisk)와 대니얼 드류(Daniel Drew)는 19세기 중반 월가의 탐욕과 부패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월가에서 '한몫' 잡자는 공통분모로 뭉친 이들은 시장을 염색 공장부터 철도회사까지 섭렵하며 적대적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 과정에 시장을 상대로 온갖 잔혹한 행위를 일삼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배를 탄 동료를 등치는 일도 불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리철도사의 경영권 분쟁이다.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밀려난 코넬리우스 반더빌트는 세 인물의 농간에 주식을 대량으로 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지분을 사들였다.


말 그대로 주식을 '찍어내는' 불법 행위에 주주 가치는 크게 훼손됐고, 반더빌트의 자금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 때 드류가 비밀리에 반더빌트와 접촉해 거액을 요구하며 경영권을 되찾을 묘안을 제시했고, 이를 알게 된 굴드와 피스크가 주가를 조작해 드류를 파산시켰다.


굴드와 피스크는 금시장에서 '장난'을 친 일도 있었다. 투기꾼들을 끌어모아 금에 대량 공매도 주문을 낸 후 뒤로는 금값을 가파르게 끌어올린 것. 지켜보던 정부가 나서 금을 시장에 방출, 금 시세가 폭락했다.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살아남을 묘안을 마련해 둔 굴드는 '파트너' 피스크의 처절한 몰락을 지켜보며 즐겼다.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LBO)를 통한 인수합병(M&A) 거물이었던 마틴 시겔(Martin Siegel)과 이반 부스키(Ivan Boesky)는 1980년대 내부자 거래로 월가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차입매수는 이미 30년 전 월가에 등장했고, 여기서 이른바 '흑기사'와 벌처펀드가 시장에 입성하며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아비트라지 거래자 이반 부스키는 키더 피보디 측 M&A 책임자였던 마틴 시겔에 접근했고 둘의 인연은 '전문적인 비즈니스' 관계로 발전했다. 부스키는 100달러짜리 지폐 총 15만달러가 든 가방을 시겔에게 건네며 M&A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다.


시겔의 정보는 꽤 쓸만한 것이었고, 부스키는 대량의 주식을 미리 사들인 후 뉴스에 파는 전략으로 수백만달러를 손에 넣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움직임을 포착, 조사에 들어가자 둘은 관계를 끊기로 했다. 하지만 부스키가 마지막으로 시겔에게 40만달러를 담은 가방을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달하려다 경찰에 붙잡혔고, 한 편의 영화 장면을 연출하는 것으로 두 사람의 화려한 행적도 종지부를 찍었다.


1920년대까지 월가 사기로 인한 피해는 극소수의 투자자에게 국한됐다. 거액 자산가들 사이에 벌어지는 주가 조작에 정부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후 일반인이 주식에 눈을 뜨면서 피해 범위가 넓어졌고, 기업 경영자가 주가 조작이나 분식회계에 가담하는 일도 늘어났다.


CDO와 19세기 주가 조작은 구조적으로 다른 듯하지만 묘한 공통점을 갖는다. 최첨단 금융공학이라는 구조화 증권을 매개로 한 금융사기도 결국 알맹이는 2세기 전 수법이던 '거짓말'이었다. 골드만의 아바커스도 투자자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선수들끼리 '짜고 치는' 불공정한 거래라는 점에서 지극히 고전적인 수법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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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혜 기자 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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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혜 기자 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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