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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태 선대회장 뜻 되살리자"

동국제강, 10주기 맞아 5일 추모식···전기집 발간도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내는 쇠에 미친 사람인기라!"

송원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이 생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하던 말이다.


오는 4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동국제강은 5일 오전 서울 대치동 본사 대회의실에서 오너 일가 유가족과 동국제강 그룹 임직원등이 참석한 가운데 10주년 추모식을 개최한다. 또한 동국제강은 고인의 발자취를 기리는 송원전기도 발간할 예정이다.

지난 1927년 태어난 장상태 회장은 서울농대를 졸업후 농림부에서 공직 생활을 하다가 돌연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아버지인 장경호 창업주의 뒤를 이어 동국제강을 이끌게 된다. 40여년의 기업가 생활 동안 그는 '바늘에서 선박까지-철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는다'는 신조대로 오직 철강사업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포스코 창업주인 박태준 명예회장도 1960년대 중반 포항제철소를 건설할 당시에는 쇠에는 문외한 이었던 까닭에 쇠 생산의 초보적인 문제부터 제품화 된 쇠의 공급(판매) 등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생기는 의문점이 날 때마다 장상태 회장에게 문의를 했다고 한다.


특히 장상태 회장은 선제적 대규모 투자를 추진해 성공을 거뒀다. 정부가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자 1971년 2월 국내기업중 처음으로 후판사업에 뛰어들어 그해 2월 부산제강소에서 그해 2월 연산 15만t의 후판 공장을 준공해 생산을 개시했다. 이는 이듬해인 1972년 포스코의 후판 사업 진출을 이끌어냈고,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후판 시장은 크게 확대됐다.


1980년대에는 당시에도 1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부산 제강소를 포항으로 이전시켰다. 내부의 반발이 거세자 장상태 회장은 "앞으로 조선산업 등이 성장할 텐데 이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1991년 준공된 포항의 1후판 공장과 1998년 2후판 공장이 완성돼 연산 250만t 규모의 후판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특히 2후판 공장을 건설할 당시에는 IMF 외환위기가 도래하며 동국제강의 경영난이 가중됐다. 하지만 장상태 회장은 임직원들을 해고하지 않는 한편 "아내의 반지를 팔아서라도 투자하겠다"며 건설을 추진했다.


포항공장 건설을 완료하고 외환위기를 갓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2000년 4월 4일 장상태 회장은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사후 국내 조선업은 대호황기를 맞았으며, 1994년 매출 9000억원 수준이었던 동국제강은 2008년 5조6000원 규모로 성장했다.


동국제강 출신인 이해건 포스코철강대학원장은 "장상태 회장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분'인 한편 '두드려서 나는 소리를 듣고 구별할 줄 아는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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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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