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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나무골편지]출근길-네개의 에피소드

<1, 연대장과의 약속>


새벽 4시20분 침대에서 일어나는 시간, 피곤이 더 번식해 있다.제일 먼저 욕실로 간다.겨우내 욕실은 냉기에 차 있다. 내가 제대하던 날 연대장은 한가지 당부를 했었다.

"여러분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를 닦으세요. 그러면 인생이 행복해질 겁니다"


연대장은 이 얘기를 40여분간이나 늘어 놓았다. 아마도 지금껏 이를 닦으라는 말을 그처럼 실감나게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연대장은 하사관으로 출발해 대령에까지 이른 사람으로 사병들에게 매우 존경받았다.

그의 행복 전도는 뜨거웠다.그러나 약속이나 맹세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제대하자마자 연대장의 당부를 잊었다.


지난 연말 회사는 여의도에서 충무로로 이전했다. 사옥 이전 이후 내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출근 준비가 바꿨다. 예전엔 밥 먹고, 세수하고, 옷 입는 순서로 출근 준비가 이뤄졌다.


지금은 이를 닦고, 세수하고, 밥 먹고 옷을 입는다. 순서가 조금 달라진 것이다.


예전 출근 준비는 30분 이상 소요된 반면 순서가 바뀌고 나서 20여분으로 줄었다. 이것이 연대장이 말한 행복인가. 시간이 절약되는 거 ?


출근 수단도 승용차에서 버스와 전철로 바꿨다. 이렇게 변하고 나서 제대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 난 그날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그런데 아직껏 일어나 제일 먼저 이를 닦으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모른다. 변화가 인식되어질 무렵에서야 제대할 당시 연대장과의 약속이 왜 생각났는지도 마찬가지다.


연대장은 알고 있는데 나는 알 수 없는 행복 ?... 아침에 일어나 맨 먼저 이를 닦았으니 행복해지기로 하자.


<2, 북두칠성...황도에서>


출근하러 잣나무골을 나선다. 오늘 별이 보이지 않는다.
일년, 열두달...365일, 지구가 태양을 따라 여행하는 길을 황도라고 하고, 다른 말로는 시간(세월)이라고도 부른다. 순환이 반복되는 지구에서의 삶이란... 간혹 생각한다. 지구가 자전(공전)을 멈춘다면 우리에게서 시간(세월)도 정지하고, 생로병사와 같은 소멸의 길도 멈추는 건가 ? 새벽 잣나무골에 봄이 오면서 북두칠성은 북쪽 하늘 한 복판으로 꽤 올라갔다.


겨우내 서북편 무갑산 자락에 걸렸던 북두칠성이 다시 북편 양자산 위 천정으로 올라가는 동안 카시오페아는 더 남으로 내려갈 것이다. 잣나무골은 북향이다. 그래서 북두칠성과 내 새벽이 응시하는 방향이 일치한다. 황도 위에서의 동행. 북두칠성이 다시 뜨고 지는 한 결코 길을 잃지 않으리라. 그것이 내게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하는 연유가 된다.


지금쯤 북두칠성이 어느 곳에서 잠들 준비를 하는 지 가늠해본다. 내게 두개의 날만이 공존한다. 별이 보이는 날과 보이지 않는 날이다. ** 만물의 생성 이전에 도(道)가 있고, 흐르는 것(法)과 흐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철칙처럼 내게도 두개의 날들로 이뤄져 있다.


별들이 잠들려고 한다. 나는 지금 일하러간다. 그 둘간의 공존과 조화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별은 윤동주의 도덕률였듯이 내게는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의무와 같다. 아 ! 별들과 이별하는 날은.... 


<3, 검은 옷들>


여섯시 정각 2호선 강변역. 나는 정확히 외순환열차의 뒷편 다섯번째 칸에 오른다. 다섯번째 스크린 도어 양옆으로는 롯데리아와 에이즈 예방광고가 펼쳐져 있다. 네번째 칸으로는 이십대 여성 한 사람이 오른다. 나는 그녀와 몇차례 눈이 마주친 적 있다. 170cm 정도의 큰 키, 파머 머리 그리고 검은 색 코트가 단정하다. 중견기업의 여비서쯤 될 것 같다.


나는 그녀가 몇차례 눈을 마주치고서야 그가 늘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 시간 시청 방향으로 움직이는 외순환선 뒷편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녀가 검은 옷만 입고 있다고 느끼던 날 다섯번째 칸에는 세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 검은 옷을 입었다는 걸 알아챘다. 얼른 헤아려본다. 모두 마흔세명. 마흔 사람이 검은 옷을 입었다. 대부분 졸고 있다. 검은 옷을 덮고 있는 것 같다.


그 시간 전철을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노동자들이다. 작업복 차림도 많다. 몇 사람은 구분이 간다. 내 앞 정면에 앉은 초로의 사내 둘은 빌딩 경비, 그 옆에 매일 졸고 있는 아주머니는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곧 이들이 검은 옷을 벗고 화려한 날개 옷으로 갈아입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열차에서 내릴 때는 지상으로 비상하는 상상을 한다.


내가 가진 겨울 양복은 세벌이다. 모두 검은 색이다. 다만 옅거나 줄 무늬가 있는 정도일뿐이다. 열차안에서 양복을 입은 사람은 나뿐이다. 왠지 이질감이 든다. 나는 이런 이질감을 예전에도 느낀 적 있다. 모내기철, 출근하려고 차를 몰고 내려오면서 좁은 진입로에서 경운기와 마주 했을 때도 그랬었다. 혹은 이른 아침부터 벼를 베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 시간 왜 도시로 돈을 벌러가는 거지 ? 하는 의문이 들 때도 그러했다.


나는 도시와 전원을 오가며 생계를 유지한다. 나는 날마다 그 경계를 넘는다. 그런데도 아직 동화되지도 타협하지도 못한 무엇인가가 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속에서 검은 옷을 입고도 동화되지 않은... 시골 한복판에 살면서 시골사람이 되지 않은 기분.


나는 나직이 내게 말을 건넨다.
"벗어라. 검은 옷 !!"


<4, 을지로 3가에서 회사까지>


을지로 3가역에서 충무로 사옥까지의 거리는 대략 5백보 가량...시간으로는 6∼7분. 500이라는 숫자를 확인하기까지 나는 여러번 실패를 반복했다. 지하철 문에서 개찰구까지 30보, 다시 9번 출구 방향으로 120보, 지하도 크라운베이커리 빵집 앞에서 우회전해서 9번 출구밖에까지 200보, 9번 출구에서 회사 정문까지 150보 정도다.


고백하자면 대략적이나마 측정하는데 한달 가량 걸렸다. 이 거리는 대략 50보 정도의 편차가 있다. 날마다 세는 숫자가 다르다. 중간에 헤아리던 숫자를 몇차례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끝내는 내가 다니는 을지3가역에서 사옥까지의 거리는 5백보로 규정했다.날마다 다르고, 간간히 헤아려지지도 않는 길을 5백보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정말 옳은 것은 아니다.


세상은 數로 이뤄져 있다. 숫자는 명확한 것 같지만 그건 오해다.수는 아주 명확한 것의 의미가 아니다. 수는 익명성이다.


'631108이라는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남자가 2호선 전철을 타고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9번출구를 통해 5백보를 걸어 6시30분 회사에 출근했다.'


헐 !! 이것이 말이 되나.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처럼 말이다.


우리는 숫자속에 정체성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 세상은 수많은 숫자가 있다. 주민등록번호와 개인소득과 실업률, 고과 등급 등등....도무지 믿을 수 없는게 숫자다.
 
나는 두달간 숫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631108이라는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남자가 2호선 전철을 타고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9번출구를 통해 5백보를 걸어 6시30분 회사에 출근한 남자"가 돼버린 것이다.


* 윤동주의 '서시'에서
** 노자의 '도덕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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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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