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외교문서]'중월전쟁', 중-소 정면충돌로 이어질 뻔

[아시아경제 장용석 기자] 지난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중월전쟁) 당시, 베트남을 지원한 소련이 남중국해에 군함을 배치하는 등 중국과의 정면충돌 직전까지 갔던 것으로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아울러 당시 미국도 유사시에 대비해 항공모함을 비상 대기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통상부가 22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소련은 중국-베트남 전쟁 발발 나흘 뒤인 1979년 2월21일 태평양 함대 소속 1만6000t급 순양함 1척과 미사일 탑재 구축함 1척을 남중국해로 보냈다. 당시 베트남 해역엔 소련 군함 12척이 배치됐고, 소련의 정찰기가 국경지대와 근해를 정찰하던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당시 중국을 향해 "너무 늦기 전에 베트남에 대한 오만한 공격을 중지하라"고 경고했고 소련은 전군에 '1호 임전 태세령'을 내렸다.


중국 역시 소련군의 측면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소련 접경지역인 신강과 탄주, 심양 등 3개 군구에 1급 전쟁 경계 태세령을 하달했다고 당시 AFP 통신이 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 소식통은 "당시는 공산권 국가들을 양분하고 있던 소련과 중국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시기"라며 "베트남이 중국이 아닌 소련을 지지한데 이어, 친(親)중국적인 캄보디아를 침공한 사실이 중국-베트남 전쟁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리 외무부 또한 1979년 2월19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중국이 베트남을 공격한 것은 베트남이 친중국적인 캄보디아를 침공한 데 대한 보복 성격이 강하다"며 "베트남의 배후엔 소련이 있다"고 보고했다.


아울러 소련은 "중국의 베트남 침공은 베트남에서의 패배를 복수하려는 미국에 의해 고무됐다"며 미국을 겨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아시아 공산국가들 간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으나, 소련의 분쟁 개입 가능성이 높아지자 유사시에 대비해 2척의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한 미국 서태평양 함대를 일본과 필리핀 등에서 '준비태세'에 돌입시키고, 미 항공모함은 24시간 비상대기에 들어갔다고 외교문서에 기록돼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당시 프랑스 '르몽드'지는 사설에서 "소련의 반응에 따라 3차 대전이 시작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카터 대통령은 "중국의 공개적인 행동은 오히려 소련의 영향력을 높이고, 보다 큰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덩샤오핑(鄧小平) 중국 부수상에게 지적한 바 있다"며 중국의 군사행동에 공개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할 것이란 내용의 친서를 박 대통령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중국-베트남 전쟁은 베트남의 화교 대량 추방과 양국 국경지대에서의 군사충돌에 반발해 중국이 1979년 2월17일 베트남을 침공하면서 시작됐으며, 중국은 국경 부근의 베트남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지방도시를 제압한 뒤 3월6일 베트남으로부터 군대를 철수시켰다.

[아시아경제 증권방송] - 종목 수익률 100% 따라하기


장용석 기자 ys4174@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