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공수민 기자] 전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일본의 '품질경영'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장기 불황과 내수 침체는 주요 제조업체를 비용 절감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고, 그 부작용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일본의 자존심 도요타 자동차의 연쇄 리콜 사태는 비단 개별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장인 정신과 강한 '디테일'로 대표되는 일본 제조업의 이미지가 총체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6일, 가속 페달 결함을 이유로 미국에서 8개 모델의 생산 및 판매 중단키로 한 도요타의 결정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어 유럽과 중국으로까지 리콜 조치를 확대하기로 하면서 일본 제품의 품질에 대한 신뢰에 커다란 흠집이 생겼다.
미국 언론은 그동안 일본의 자존심과도 같았던 제조업계의 ‘모노즈쿠리’ 정신이 퇴색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모노즈쿠리란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 만든다는 뜻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 등과 같은 일본 대기업들은 바로 이 ‘모노즈쿠리’ 정신을 앞세우면서 명성을 얻었다.
전문가들은 일본 제조업체들의 품질 경영이 무너진 것은 경기침체 따른 과도한 비용절감과 치열해진 글로벌 경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속되는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인해 일본 업체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대규모 비용 절감에 나섰고, 이는 품질 악화라는 악순환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또한 심화되는 글로벌 경쟁 속에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부품을 대량 구매한 것이 대규모 리콜 사태를 불어왔다고 지적했다. 부품 대량 구매로 한 가지 부품이 많은 제품들에 사용됐기 때문.
엔지니어링 싱크탱크인 일본리서치연구소의 미야우치 히로노리 연구원은 “기업들이 제품생산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추세며 비용 절감을 위해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때문에 제품의 질을 관리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전자제품 업계는 사업환경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일본의 '장인정신'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제는 전체 생산과정이 자동화됐으며 제조업 상품들은 디자인과 마케팅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소비자들의 제품에 대한 불만 및 사고 접수와 제품 리콜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는 지난 2007년 일본 기업들이 제품으로 발생한 모든 사고를 보고하도록 한 새로운 법 도입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7년 5월에 일본 기업들이 제품과 관련된 모든 사고를 10일 내로 보고하도록 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다. 새로운 법 도입으로 지난 2007회계연도(2007.4~2008.3)에 접수된 사고건수는 6371건으로 전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다.
2007년 이전에만 해도 제품 관련 사고 공개는 회사 재량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세간의 이목을 끄는 안전 관련 스캔들이 터지면서 규정이 바뀌게 된 것이다.
지난 2006년 일본 나고야 소재 파노마가 생산한 히터기 결함으로 인해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파노마은 처음에는 제품과 사망사건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결국 히터기의 결점으로 사용 시 유독가스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새로운 법이 도입됐다.
일본 교통성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2008년 5년 동안 일본 국내차 리콜 건수는 앞선 5년(2000~2004년)에 비해 2배로 급증했다. 또한 자동차, 식품, 약품을 제외한 안전과 관련된 리콜 건수는 2009회계연도에 189건으로 늘어났다. 이는 3년 전에 비해 무려 80% 증가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규모 리콜 조치들이 잇따른 것은 최근 일본 기업들의 소비자보호 트랜드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동안 식품 위생 및 가전제품을 사용하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안전 관련 사고가 잇따르자 지난해 일본은 제품 안전을 단속하는 소비자 민원실을 설립했다.
그러나 대다수 일본 기업 경영진들은 여전히 양질의 제조업 제품이 일본 경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 일본 프린터 및 카메라 제조업체 리코의 사쿠라이 마사미츠 사장은 “일본이 모노즈쿠리 정신을 버리고 다른 길을 걷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며 품질경영을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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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민 기자 hyun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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