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열린 미스코리아대회에서 '진(眞)'에 당선된 김주리 씨가 '러시아 볼쇼이발레학교'를 졸업한 발레리나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된 적 있다. 러시아에는 '미코 진' 김주리 못지않은 예쁘고 늘씬한 예비 발레리나들이 한해에도 수백 명씩 발레를 배우러 온다. 각 나라에서 '발레 좀 한다'는 사람들이 종주국에서 발레를 배우고자 물밀듯이 몰려오는 것이다.
'노래하고 연주하며 춤춘다'는 뜻의 발레는 러시아가 만들고, 러시아가 발전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정 러시아 때 생겨난 발레는 19세기 중기에 페티파가 차이코프스키의 곡에 안무를 가미, 웅장하고 화려한 춤으로 완성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를 '발레 종주국'으로 칭한다. 유학생들이 몰려오는 것도 이 같은 '러시아 발레'의 찬란한 역사 때문이다.
발레는 이제 '러시아 문화의 꽃'으로 불린다. 러시아 하면 으레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역시 '호두까기인형'과 '백조의 호수' 등으로 대변되는 발레다. 러시아의 볼쇼이 발레단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유명세를 탄 볼쇼이 발레단은 전 세계를 누비며 러시아의 민간외교사절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러시아에는 볼쇼이 외에도 키로프, 벨로루시 등 세계적 발레단이 수두룩하다.
러시아에는 무용수를 양성하는 8년제 또는 6년제 국립무용학교도 20여개나 있다. 모스크바 루나차르스끼극장예술대학과 뻬쩨르부르그음악원의 발레마스터과 등 간부양성기관도 따로 존재한다. 각 도시에 산재해있는 발레학교들은 신예 발레리나 양성에 여념이 없다. 3~4살짜리 꼬마들은 이곳에서 피나는 훈련과정을 반복하면서 '세계적인 발레리나'를 꿈꾼다.
난 올해에야 비로소 발레를 극장에서 봤다. "러시아에 있으면서 발레 한번 못 봤냐?"는 비아냥을 더 이상 듣기 싫어, 작심하고 모스크바에 위치한 '볼쇼이극장'으로 향했다. 발레가 워낙 대중화된 나리이기에 티켓 값도 250루불(한화 약 1만원) 정도로 저렴했다.
극장에 들어서니 2000석 이상의 좌석에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있다. 공연 시작과 함께 조명이 금세 어두워졌고, 커튼이 올라갔다. 무대 밑에선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시작됐다. 커튼 뒤 무용수들은 능수능란한 움직임으로 음악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들의 화려한 몸짓과 표정에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같이 공연을 관람했던 '발레 마니아' 친구는 "발레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며 "공연을 보고 있으면 혼까지 뺏길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다소 따분하고 지루할 것 같은 발레이지만, 현장에서 보니 어느 영화나 연극보다도 감동적이었다. 평생 안 볼 것 같던 발레를 그날 이후 두 번이나 더 봤다. 공연이 끝난 후 남아있는 여운에 밤잠을 설치는 것도 예삿일이 됐다.
글= 김현철
정리=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 김현철 씨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시베리아 교통대학교에서 학부과정을 마치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현재 노보시비르스크 한인 유학생 대표직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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