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정문', '하버드의 메모리얼 홀' 등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대부분 학교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있다. 북경대 역시 상징 건물이 있다. 바로 '보야탑(博雅塔)'이다.
대략 8층 건물 높이의 보야탑은 상징성이 커지면서 '교내 어디서든 보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까지 만들어지게 됐다. 이 때문에 북경대에는 8층 이상 되는 건물을 짓지 못한다. 보야탑은 세워진 지 80여년이나 지난 낡은 탑이지만, 여전히 콧대 높은 모습으로 캠퍼스를 내려다보고 있다.
지금은 북경대 최고 명물로 꼽히는 보아탑이지만, 설립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보야탑은 당초 교내 물 공급을 목적으로 지워진 탑으로, 일종의 물탱크였다. 만들어진 해는 1924년, 당시 수탑을 짓기로 결정한 북경대는 건축 양식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벽돌식 고전탑 양식으로 지워야만 한다는 의견과 사원 안에만 쓰이던 벽돌식 고전탑 양식을 교내 탑에 적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던 것. 수년 간 지속됐던 논쟁은 결국 '벽돌식 고전탑 양식'으로 짓는 걸로 마무리됐다. 만일 이때 반대 의견을 잠재우지 못했다면 지금의 보야탑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보야탑에 견줄 만한 또 하나의 북경대 명물이 있으니, 바로 보야탑 곁에 있는 '웨이밍 호수(未名湖)'다. 찌그러진 타원형에 버드나무로 장식된 웨이밍호는 중앙에 200평 남짓한 크기의 인공 섬을 띄운 아름다운 호수다. 건국대의 일감호 정도 되는 크기의 이 호수는 한국말로 하면 '이름이 지어지지 못한 호수'다.
왜 이런 이름이 명명됐을까. 그 유래는 20세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연경(燕京)대(북경대의 구명칭)'는 교내 건물들을 M· S 등 알파벳으로 명명하던 때였다. 이를 참다못한 치엔무 교수가 총장을 찾아가 "애국은 이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교내 모든 건물 명칭을 중국어로 바꿔야 한다"고 충고했다.
총장이 치엔무 교수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건물 명칭들은 하나둘씩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수 이름을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공모를 했지만, 후보로 올랐던 명칭들인 '옌위엔(燕?) 호', '옌베이(燕北)호' 등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그런 이름으로는 웨이밍호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총장은 그럴 바에 차라리 작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웨이밍호의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북경대에는 '일탑일호'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일호는 '웨이밍호'이고, 일탑은 '보야탑'을 칭한다. 북경대의 명물이면서 '혼(魂)'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두 상징물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북경대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북경대 학생들은 웨이밍호와 보야탑이 학교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탑이 쓰러지거나 호수가 마르는 날, 그 곳은 더 이상 북경대가 아니라고….
글= 최영서
정리=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 최영서 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중국의 발전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껴 무작정 중국으로 유학, 1년6개월만에 북경대 법학과에 합격했다. 운동을 좋아해 애니캅이라는 사설경비업체 출동팀, 롯데호텔 안전실 근무 등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지난 장애인올림픽 기간에는 통역 및 가이드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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