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이건희 부자의 꿈이 담긴 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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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정민 기자]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절반이상을 생산해 내며 기술과 물량 양자에서 모두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섰다.
특히 삼성전자는 D램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낸드플래시 1위라는 위상을 앞세워 선진국들만의 전유물이던 시스템 반도체 시장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등 반도체분야에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중이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를 키워낸 일등공신이 고 이병철 삼성회장과 이건희 전 회장 부자라는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고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기 3개월전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공식행사가 1987년 8월 7일 이뤄진 삼성전자 3라인 착공식이다. 3억4000만달러라는 막대한 투자비가 소요되는 3라인 건설은 회사 전체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2라인 건설로 삼성전자의 재무상황이 크게 악화돼 있는 상황이어서 반도체 때문에 그룹 전체가 위험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며 "선대 회장이 일방적으로 착공식 일자를 지시하는 등 3라인 건설을 강력히 추진하지 않았으면 반도체 신화는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고 이 회장이 마지막 유산인 3라인 건설로 일본의 선두기업들 못지 않은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 삼성전자는 호황기를 맞아 그동안 누적된 적자까지 최단기간에 해소하며 '반도체 신화'의 시작점이자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하는 토대가 됐다.
1974년 삼성이 처음 반도체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도 삼성그룹내에서는 일본의 반도체회사들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상황에서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반도체산업 진출에 대한 우려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그룹 전체의 경영전략을 책임지고 있던 비서실이 한국반도체 인수가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결정적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동양일보 이사로 재직중이던 이건희 전 회장은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인수를 강행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전회장은 IBM이 자체 수요의 반도체를 자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 이병철 선대회장에 반도체사업의 필요성을 건의했다"며 "이후에도 기술자 스카우트부터 자료 수집까지 앞장서며 초기 반도체 사업 시작 당시 토대를 닦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디지털 시계용 워치칩을 앞세워 삼성반도체를 부도 위기에서 구출했던 김광호 전 부회장, 독자기술로 당시 최첨단 제품이던 VCR 독자개발에 성공하며 '기술의 삼성'을 일구는데 한 몫을 했던 윤종용 전 부회장, 연구소장 시절 수요공정회의를 도입, 내부갈등에 시달리던 반도체 연구소를 반도체 신화의 중축로 키워내는데 일조했던 이윤우 부회장 등 수많은 인재들이 세계 초일류 삼성전자를 만들어낸 역군들로 40년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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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jm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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