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박소연 기자]역시 오리지널의 힘은 대단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오리지널팀 내한공연에서 헨리 지킬 역의 배우 브래드 리틀의 연기는 정말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완벽했다.
최근 한국 뮤지컬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 있어 무대장치나 의상 등 볼거리의 측면에서는 이번 오리지널팀의 공연이 깜짝 놀랄 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스 어폰 어 드림' '디스 이즈 더 모먼트' 등 유명한 명곡들을 배우들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완벽한 발성으로 듣는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1885년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헨리 지킬 박사가 한 인간속에 공존하는 선과 악을 분리시키고자 하는데서부터 출발한다.
지킬 박사는 두 가지 본능을 분리시킴으로써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화학약품을 이용한 실험에 착수한다.
임상실험대상을 구하지 못한 지킬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하기로 결정한다. 실험이 진행될수록 지킬의 인격은 선과 악으로 분열되고 결국 악으로만 가득 찬 제 2의 인물인 하이드가 지킬의 내면을 모두 차지하게 된다.
동시에 지고지순한 약혼자 엠마와는 점점 멀어지고 대신 클럽에서 일하는 루시를 가까이 하며 쾌락을 즐기게 된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연구를 방해했던 자들을 하나씩 잔인하게 죽이기 시작하는데, 불행하게도 지킬은 더 이상 사악한 하이드를 통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급기야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사악한 하이드로 변한 지킬은 하이드의 만행을 더이상 견딜 수 없어 친구와 연인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 중에 하나다.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는 과정이 워낙 드라마틱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뮤지컬 곡들이 한결같이 아름답고 감동적이기 때문.
'원스 어폰 어 드림'이나 '디스 이즈 더 모먼트' 뿐 아니라 '썸원 라이크 유' '인 히즈 아이즈' 등 주옥같은 명곡들이 극의 전반을 흐르며 쏟아져 나온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자 했던 지킬 박사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선과 악의 기로에서 울부짖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또 연구에 광적인 지킬, 짐승처럼 포효하는 하이드의 모습과 그의 여인들 즉 '성녀' 엠마와 '창녀' 루시를 배치함으로써 인간내면의 넓고 모순적인 스펙트럼을 명확히 나열, 강렬한 드라마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지난 2005년 '오페라의 유령' 내한공연에서 '유령' 역을 맡아 국내에도 이미 많은 팬들을 가진 브래드 리틀은 젠틀한 지킬 박사와 악의 화신 하이드로의 완벽한 전환을 보여준다.
지킬일 때는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반듯한 영국신사의 모습이지만, 하이드로 변신했을 때는 구불구불한 머리를 짐승처럼 풀어헤치고 굶주린 짐승처럼 악을 실행한다. 외모 뿐만아니라 목소리도 마치 두 사람이 연기하는 것처럼 확연하게 변한다.
극의 하이라이트는 지킬의 몸에서 지킬과 하이드가 번갈아 발현하며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부분.
하지만 가장 큰 박수를 이끌어낸 장면은 지킬 박사가 실험실에서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며 부르는 노래 '디스 이즈 더 모먼트'다. 관객들을 전율케 하는 브래드 리틀의 노래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너무 많은 박수가 나와 잠시 극이 지연됐을 정도.
엠마(루시 몬더)와 루시(벨리다 월러스톤)역의 배우들도 뛰어난 연기력과 가창력을 선보였다. 상반되는 이미지의 두 여인은 천사같은 매력과 요부의 느낌을 제대로 살려냈다.
엠마가 고뇌하는 지킬을 위로하며 부르는 노래 '원스 어폰 어 드림'과 엠마와 루시가 지킬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노래하는 '인 히즈 아이즈' 등은 쇠로만든 심장도 녹일 것처럼 아름답게 울려퍼졌다.
극은 지킬의 자결로 막이 내렸지만, 브래드 리틀은 팬들의 갈채속에서 다시 한번 머리를 풀어헤치고 사악한 하이드로 변신해 즐거움을 안겨줬다. 공연은 오는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1588-5212)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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