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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노인의 돈은 살아서도 ‘유산’

시계아이콘01분 35초 소요

20억원대 재산을 가진 70대 할머니가 살해됐습니다.범인을 잡고 보니 다름 아닌 그녀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버려진 아이를 거두어 키운 어머니를 살해했기에 아들의 배은망덕에 사람들은 더욱 분노했습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아들은 도박에 빠진 상태였고 이런 아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아들에게 경고를 했다고 합니다. 도박 빚에 시달리고 있던 아들은 어머니가 한다면 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기에 유산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아마도 그 아들은 어머니의 유산은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제까지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는 현재 직업도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있어도 고민, 없어도 고민인 '돈'


노후대책 하면 금전적인 대비만을 생각하지만, 자녀에게 남길 유산이 있는 경우에는 그 '돈'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필요합니다. 요즈음 노인들 사이에서는 자녀들에게 물려줄 생각하지 말고, '다쓰고 죽자' 라는 말이 공공연히 오고 가지만, 아직 다쓰고 죽는 전례를 본 바가 없으니 이 또한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또한 유산을 당연히 제 몫으로 생각하고 있던 자식들 입장에서는 부모세대의 이런 변화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해전 지방에 전원주택을 마련한 지인의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산세가 좋은 한적한 산골마을 이었습니다. 아직도 동네 곳곳에는 지은 지 오래된 옛날 집들이 남아있었습니다. 동네 구경을 하는데, 담벼락이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할아버지가 벽에 기대앉아 소주를 드시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로 대낮부터 술을 드시냐"고 물어봤습니다. 할아버지는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아들만 셋이 있다고 합니다. 큰 아들은 제법 도시에서 잘사는 편인데 막내 아들이 형편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늘 변변한 집 한칸 마련하지 못하고 사는 막내가 마음에 걸리던 중 갖고 있던 땅을 팔아 돈을 마련했는데, 큰 아들의 반대로 막내 자식에게 돈을 건네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사 지낼 장손의 마음을 거스르고 막내에게 돈을 줄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하기만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돈으로 할아버지 집부터 고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집 상태는 형편이 없었습니다. 저 혼자 생각에 과연 자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할아버지 댁에 온 적이 있을까 싶게 집 상태는 엉망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할아버지는 자신의 돈을 가지고도 자신 마음대로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자신을 위해 그 돈을 쓸 생각조차 못하고, 자손들에게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것이 단지 개화되지 않은 시골 노인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고령사회, 노인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노년의 삶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부모를 돌보는 것에 대한 자식들의 생각의 변화로 인해 유산상속에 대한 딜레마를 겪고 있는 듯합니다. 부모 부양에 대한 책임은 희미해지고, 유산에 대한 권리만 남은 자녀세대의 의식과 더 이상 자식이 노후에 대한 보험 역할을 상실한 세상의 변화 앞에서 노인들의 의식 또한 변화의 기로에 있습니다.


‘부모는 조건 없이 퍼주는 존재다’ 라는 명제는 자녀들이 효를 다하던 시대의 이야기가 아닐지요.

리봄 디자이너 조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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