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 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뜻을 펼칠 때를 기다렸던 강태공. 그를 만난 주나라 문왕은 “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첫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강태공은 물과 나무와 사람의 3가지 경우를 들어 거침없이 대답했죠.
“샘이 깊으면 물이 잘 흐르고, 물이 잘 흐르면 물고기가 즐겨 살게 되는 이치가 곧 情입니다. 또한 뿌리가 깊으면 나무가 잘 자라고, 나무가 잘 자라면 열매를 맺는 것 역시 情입니다. 뛰어난 사람들이 같은 마음을 품으면 친밀하게 되고, 그럴 경우 큰일도 능히 해낼 수 있으니 이를 情이라 하겠습니다.”
이어서 그는 “말이라는 것은 진실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일의 지극한 상태를 뜻합니다”며 문왕이 진지하게 늙은이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이도록 미리 배수진을 쳤습니다.
요즘 식으로 보자면 80고령에 접어든 재야인사를 대통령이 직접 낚시터까지 찾아가서 국가경영에 관한 첫 질문으로 ‘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물어 본 셈이죠. 그런데 하필이면 강태공은 어떤 속셈으로 물과 나무와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들어 情을 설명했을까요?
인간관계에 정이 없는 사람들에게 흔히 ‘팍팍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 팍팍한 자연 상태는 가뭄으로 인해 물기가 바싹 말라 흙먼지가 날리는 경우에 쓰는 표현이죠. 눈물이 없는 인간성도 팍팍하긴 마찬가집니다. 情을 설명하기 위해 물을 끌어들인 까닭을 조금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나무입니다. 나무야 말로 물 없이는 자랄 수 없고 뿌리가 하는 일이 물을 퍼 올리는 작업이며, 열매는 그 결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일찍이 고대 철학자 탈레스도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확신을 갖고 설파했습니다.
강태공이 세 번째 예로 든, ‘뛰어난 사람들이 같은 마음을 품으면 친밀하게 되고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말. 아마도 군신 간에 반목하지 않고 언로가 트이면 능히 왕도정치가 가능하다는 얘기인 듯합니다. 요즘 들어서 심각한 ‘소통부재의 문제’가 강태공 시대에도 여전하여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겠지요.
대운하를 파서 강줄기를 이어보려다가 여의치 못하자 이른바 ‘4대강 살리기’에 정권의 운명을 건 ‘이명박정부’의 철학이 저 멀리 강태공의 원대하고 깊은 뜻에 닿아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때 전두환 정부는 금강산댐에 대처하는 ‘평화의 댐’ 조성문제로 위기를 조성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고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다고 국민들이 ‘물태우’라는 말로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물은 시대를 따라 그 의미가 추락한 적도 있습니다만 치수(治水)는 언제나 중요한 국가대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시작부터 청계천으로 재미를 봐서 강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머리 수로는 막강한 여당이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류를 거듭하며 2년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초미의 사안인 비정규직문제가 제자리걸음이고, 미디어법도 올가미에 걸린 듯이 행보가 자유롭지 못합니다. 교육개혁도 말 뿐이며, 내년이면 전당대회에다 단체장선거까지 걸려서 줄줄이 숨가쁜 일정으로 여당의 운신 폭이 좁기만 합니다.
특히 개성공단에서 시작된 북한과의 협상과정을 보면 무기력한 정치의 종합 편을 연출 하는 것 같습니다. 대의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욕을 먹더라도 나서는 관료가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매사 꼬여 가는 상황에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은 보기 드뭅니다.
‘기꺼이’가 아니라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내놓은 듯한 대통령 재산기부의 모양새도 그렇습니다. 대통령 사위를 그 재단의 이사로 앉혀야 안심이 될 정도라니... 그런 식이면 안 된다고 간언하지 못하는 측근들이나, 이사를 맡지 않겠다고 거절하지 못하는 사위나 다들 소통부재를 부채질하는 인물들입니다.
강태공 시대보다도 못한 ‘情 떨어진 정치’를 보며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정치를 경멸하는 국민은 경멸당할 만한 정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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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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