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BRICs)는 지난 2001년 짐 오닐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처음 명명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대항마를 이르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또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차세대 성장 엔진으로 통했다. 이른바 '브릭스 펀드'는 자산운용업계의 커다란 트렌드를 형성했다.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대륙에 흩어진 4개국은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보다 강한 존재의 의미를 드러냈다. 금융시장에 이어 실물경기까지 선진국 경제가 총체적으로 무너져내리는 사이 막대한 외환보유액과 국부펀드를 등에 업은 브릭스가 시장을 호령하기 시작한 것. 이달 중순 4개국은 러시아에서 첫 공식 회담을 갖고 선진국을 향해 보다 강력한 금융시스템 복원을 주문하 등 세(勢)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를 틈타 부상하는 듯했던 브릭스에 대해 오히려 회의적인 시각이 짙어지고 있다. 관심을 모았던 공식 회담은 산업 경쟁력과 정치 및 문화적 배경, 지리적 여건 등 어디에서도 공통점을 찾기 힘든 브릭스가 단일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하나의 블록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영토나 경제 규모가 거대한 신흥국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공통 분모가 없는 어색한 조합일 뿐이라는 얘기다.
최근 시장 움직임도 마찬가지. 이들이 하나의 구심점을 갖고 뭉치기는 힘들고, 따라서 브릭스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6월 들어 중국 증시 강한 랠리를 보였다. 상하이종합지수는 9% 가량 오르며 미국 S&P500 지수보다 높은 성적을 거뒀다. 반면 러시아 증시는 고점 대비 20% 이상 떨어지며 기술적 분석을 기준으로 베어마켓에 진입했다. 브라질과 인도 증시는 완만한 내림세를 보였다.
사실 4개 국가의 증시 탈동조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러시아와 브라질 증시가 강한 랠리를 보인 반면 중국과 인도는 가파르게 하락했다.
이 같은 탈동조화는 4개 국가를 하나의 투자권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RBC캐피탈마켓의 이머징마켓 전략가인 나이젤 렌델은 "굳이 4개 국가를 하나의 블록으로 보려 한다면 러시아를 제외하고 브릭스가 아니라 빅스(BICs)로 묶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러시아를 제외한다면 브라질 역시 반드시 포함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브라질은 중국 및 인도와 동질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HSBC의 글로벌 이머징마켓 리서치 책임자인 필립 풀은 "브릭스는 더 이상 투자자들 사이에 하나의 아이콘이 아니다"라며 "4개 국가의 주가가 동반 상승하고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던 금융위기 이전과는 의미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투자가들은 브릭스를 하나의 투자권을 볼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투자처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 국의 밸류에이션을 정확히 분석해 투자 지역을 엄선하고, 공통적인 글로벌 경제 여건보다 내부적인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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